경향신문

‘속도’의 건축에 반(대)하여, 반할 수 있는 건축 꿈꾸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 책과 삶

‘속도’의 건축에 반(대)하여, 반할 수 있는 건축 꿈꾸다

입력 2012.07.13 22:26

▲반하는 건축…함성호 지음 | 문예중앙 | 335쪽 | 1만5000원

책 제목의 ‘반하는’은 중의적이다. ‘반대한다(反)’는 의미와 ‘빠져든다(惑)’는 의미다. 상반된 의미를 함축한 ‘반하는’은 책 내용과 편집 방향을 압축하고 있다. 시인, 건축가, 만화 비평가, 공연 기획자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함성호는 두 개의 시선으로 현대건축을 사색한다. 그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있는 건축이라는 공간 체험 예술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들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려 했다”고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일갈했다. 함성호도 이 관점에 동의한다. 건립부터 해체될 때까지 정권의 논리에 휘둘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롯데월드, 63빌딩, 국립민속박물관도 정치적 선전물이다. 그래서 건축은 왜곡된 역사를 담기도 한다. 현대건축은 한편으로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다. 함성호는 오늘날 건축의 모든 길은 ‘자본의 이익’으로 통한다고 본다. 광고판에 점령당한 거리가 그렇고, 아파트 숲과 신도시 계획도 부동산 자본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이다.

[책과 삶]‘속도’의 건축에 반(대)하여, 반할 수 있는 건축 꿈꾸다

그는 ‘속도’라는 도시 건축의 도그마에 반대한다. 학교, 주차장, 도로, 오피스 건물, 문화시설 등 도시를 이루는 건축들은 결국 사람을 길들이고 조종한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도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속도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도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현대인의 삶은 결국 속도 혹은 편리성에 맞춰 설계돼버렸다고 분석한다.

아파트는 속도와 자본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된 건축이다. 그는 아파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아파트가 고부 갈등을 키웠다고 말한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는 구조인 탓에 아파트는 아들, 며느리, 시어머니 사이의 긴장관계를 일상적으로 노출시킨다. 그 결과 아파트 구성원의 다툼도 잦아진다는 논리다.

함성호를 빠져들게 만드는 건축은 ‘공간의 무의지’를 지니거나 ‘느슨한 스케일’을 지닌 것이다. 공간의 무의지는 작위적이지 않은 공간,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공간을 뜻한다. 또 느슨한 스케일은 게으르고 꾸물대는 성향을 의미하는데 속도와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이다.

그는 숲을 나온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이제 자연을 도시에 심고자 하지만 이미 그 자연이란 것도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게 돼버렸다고 한다. 건축에 자연을 열심히 들여놔도 작위적인 맛을 지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현대건축이 이제 새로운 사과와 마음의 진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할 시점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