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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m 도로변에 치킨집만 14곳… 생존을 건 ‘창신동 치킨게임’

입력 2012.07.15 22:02

수정 2012.07.1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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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신동 치킨게임

휴일 없이 새벽 두시까지 일해도 월 100만원 쥐기 빠듯

“치킨집 또 생길까 매일 조마조마”

치킨게임. 자동차를 타고 마주보고 달리다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누군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손해를 감수하면서 벌이는 ‘버티기 게임’이다. 서울 시내의 한 도로변에서 치킨게임이 펼쳐졌다. 그것도 치킨(통닭) 가게끼리 벌이는 ‘진짜 치킨게임’이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에서 창신역 사이 길이 700m의 직선 도로변이다. 왕복 4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이곳에는 치킨가게 14곳이 자리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 한 달간 이 거리를 7차례 방문해 그들이 사는 법을 지켜봤다.

■ 700m거리에 치킨집만 14곳

지난 10일 동묘앞역 10번 출구, 계단을 오르자 치킨냄새가 진동했다. 출구 오른쪽 주상복합아파트에 있는 ‘삼통치킨’에서 나는 냄새다. 야외 테이블 10곳 중 세 곳에 손님들이 앉아 치맥(치킨·맥주)을 즐기고 있다. 같은 건물 1층에는 기업형슈퍼마켓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사이에 두고 ‘둘둘치킨’이 위치해 있다. 두 집은 이웃이자 경쟁자다. 바로 옆 건물에는 ‘치킨매니아’란 가게가 있다.

삼통치킨 도로 맞은편 동묘앞역 9번 출구 쪽엔 한 달 전쯤 ‘못난이닭강정’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곳은 하루 평균 강정 150박스를 팔아 이웃 경쟁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못난이닭강정 옆에는 ‘치킨마루’가 있다. 4평짜리 가게지만 7년째 자리를 지키며 8000원짜리 프라이드치킨을 판매한다.

인포그래픽 | 성덕환 기자 사진 크게보기

인포그래픽 | 성덕환 기자

바로 옆 조그만 골목 안을 쳐다보면 ‘멕시칸 치킨’이 숨어 있다. 주로 중·장년층 단골들이 찾는 곳이다. 치킨마루에서 50m 내려가면 ‘꿀벌강정’이 있다. 이 가게가 들어서기 직전 5년 이상 자리를 지켰던 맞은편 ㄱ치킨이 문을 닫았다.

창신초등학교를 지나면 저가형 치킨업체들이 등장한다. ‘OK치킨’은 8000~9000원인 저가 프라이드치킨을 판다. 평일 치킨 판매량이 30마리 정도다. 맞은편엔 ‘땡큐맘치킨’이 버티고 있다. 다소 높은 가격대로, 닭을 오븐에 구운 게 특징이다. 이 집 주인은 웰빙 치킨을 창신동 치킨상권의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일 판매량은 25마리에 그친다.

OK치킨의 바로 옆 건물엔 ‘치킨히어로’와 한 달 전 개점한 ‘꼬꼬맛강정’이 있다. 두 곳 모두 배달을 주로 한다. 바로 옆자리에 있던 ㄴ치킨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인근 ‘썬더치킨’은 OK치킨과 함께 이 지역 최저가 치킨 프라이드와 생맥주를 공급한다. 평일 치킨 판매량은 30여마리다. ‘송유리치킨피자’는 치킨에 피자를 같이 판매해 이익을 맞춘다. ‘BBQ’는 매장이 넓은 데다 실외에도 테이블을 놓았다. 배달 쪽 최강업체로 꼽힌다.

■ 그들이 치킨집을 연 까닭은

‘치킨집 치킨게임’은 서울 창신동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치킨집 같은 동종 음식점이 몰려 출혈경쟁을 벌인다. 경쟁이 뻔한데도 문을 여는 이유가 뭘까.

‘송유리치킨피자’ 주인 한금석씨(50)는 “큰 기술과 자본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게 치킨집”이라고 말했다. 치킨집 주인 대부분은 당초 치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연히 치킨을 택한다. 한씨도 예전엔 창신동의 한 미싱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다 경기침체로 미싱공장이 어려움을 겪자 사업을 접고 치킨가게를 인수했다. 결과는 썩 좋지 않다. 이 가게에선 평일엔 치킨 15마리, 피자 15판가량이 나간다. 이 정도론 가게 유지하기조차 빠듯한 매출이다.

다른 가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치킨마루’ 주인은 7년 전 가스충전소 관리 일을 했다. 9년 전 건설회사 직원이었던 ‘치킨히어로’ 주인도 같은 이유로 이곳에 치킨집을 열었다. 이들 외에 9곳의 치킨집 주인은 아직 2년도 채우지 못한 ‘신참’이다. 썬더치킨 주인(55)은 남편이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50대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와 음식하는 일뿐”이라며 “그마저도 많이 준다는 데가 70만~8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혼자 큰 힘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라고 치킨점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대개 음식점 창업은 ‘내가 아는 사람들만 와도 몇 명인데’에서 시작된다. 별다른 전략 없이 가게만 열어놓으면 손님이 올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창신동처럼 가구 수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자영업 경험이 없는 이들에겐 목 좋은 노다지처럼 보인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 일대는 대표적인 서민동네다. 창신역 인근에는 중소형 아파트 단지가 있다. 창신역 위 언덕에는 쌍용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옆쪽에는 동부 센트레빌 아파트, 아래쪽에는 두산아파트가 있다.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옷을 주문받아 납품하는 봉제공장도 3000여곳에 이른다. 인근에 창신초등학교, 서일정보산업고등학교가 있어 학생손님도 많다. 서민들의 먹거리인 치킨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이유다.

창신동의 한 국밥집 주인은 “교육열이 높은 동네가 아니어서 치킨집이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엄마는 가까운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애들은 집에 있거나 PC방에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모가 집에 없는 동안 아이들이 치킨을 시켜먹기도 하고, 부모는 퇴근하면서 가게에 들러 야식을 사가지고 가기도 한다.

‘꿀벌강정’ 주인은 “아파트와 주택, 청룡사로 통하는 길은 이 앞 도로 하나밖에 없다”며 “퇴근하는 주민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강정을 하나씩만 사먹어도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영업 중인 한 치킨가게 주인 부부가 일요일인 15일에도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영업 중인 한 치킨가게 주인 부부가 일요일인 15일에도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기술·자본 적어도 가능해 전략 없이 너도나도 창업
‘빈익빈 부익부’ 경쟁 치열 5년 해오던 집도 문 닫아

■ 치킨가게에도 등급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쉬운 창업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쉽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ㄷ치킨 주인은 “저가 치킨 수요는 한계가 있는데 여기엔 치킨집이 지나치게 많다”며 “어차피 일정한 손님을 ‘나눠먹기’ 하는 것이어서 다 같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치킨집이 하나 더 생기면 매출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며 “길 입구에 강정집이 생긴 뒤로는 하루 판매량이 80박스에서 30박스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치킨집이 이미 많은데도 최근 더 늘어나는 추세다. 자연 매출은 급감하고 있다. ‘치킨히어로’ 주인은 “5년 전 ㄹ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 치킨집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며 “지금은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치킨집 선호지역이란 강점도 최근 무력화됐다. 경기에 민감한 서민들이다보니 조금만 사정이 좋지 않으면 외식 자체를 줄인다. 한 치킨집 직원은 “얼마 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단골손님이 오랜만에 찾아왔다”며 “그들의 급여가 월 60만~70만원으로 떨어지니 ‘치맥’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 달 매출이 900만원인 ㅁ치킨 주인은 재료비로 매출의 반이 넘는 550만원을 썼다. 한 달 내내 닭 팔고 재료값을 본사에 지불하면 점주가 쥐는 돈은 350만원이다. 이 가운데 월세 120만원, 전기료·가스비·오토바이 보험료 등으로 나가는 50만원을 제하면 한 달에 200만원 남기기도 어렵다. ㅁ치킨 주인은 “아르바이트 직원도 안 쓰고 온 가족이 매달리는데 월수입은 200만원”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꾸준히 오르는 월세도 치킨집 주인들에겐 걱정거리다. ㅂ치킨 주인은 “140만원이던 월세가 갑자기 170만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장사가 안되면 당연히 걱정이 많다. 장사가 잘되면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니 결과는 마찬가지다.

창신동 ‘치킨게임’의 판세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14곳의 치킨가게는 통상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 비싼 건물,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이른바 ‘메이저리그’. 당연히 장사도 잘된다. 창신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동묘앞역 쪽 삼통치킨이나 둘둘치킨, 못난이닭강정이 여기에 속한다. 세 치킨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BBQ치킨, 치킨매니아도 사정은 나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나머지 9곳은 사정이 다르다. 표현하자면 ‘마이너리그’ 격이다.

메이저리그는 오후 9시쯤 되면 홀은 물론이고 가게 앞 야외테이블까지 손님으로 가득하다. 가게 주인들은 매출이나 소득에 대해서는 함구하지만 주변에서는 ‘꽤나 버는 집’으로 여긴다.

반면 거리 안쪽에 위치한 저가형 치킨업체 OK치킨과 썬더치킨은 손님이 많지 않다.

썬더치킨 주인은 “역세권에서 장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초기 자금이 부족해 목이 좋지 않은 곳에 자리잡으면 장사도 안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고 덧붙였다. 치킨게임의 승자는 역시 자금력. 부익부 빈익빈이 이 작은 치킨게임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 피말리는 생존경쟁 중

치킨집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특히 마이너리그일수록 치킨게임은 심화된다. ‘땡큐맘치킨’은 손님이 매장을 방문해 치킨을 직접 들고 갈 경우 2000원을 할인해주기로 했다. 배달비용을 아끼려는 고육책이다. 값싼 1000원대 컵치킨 메뉴도 선보였다. ‘치킨히어로’는 치킨 두 마리를 주문할 경우 할인해서 판매한다.

치킨히어로 주인은 “치킨 맛은 자신 있지만 먼저 이 맛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아니냐”며 “좀 아깝긴 해도 생맥주를 원가에 판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치킨히어로는 당초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었지만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개인 가게로 형태까지 바꿨다.

‘OK치킨’ 주인은 다른 업체보다 한두 시간 늦은 새벽 3시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

그는 “평일에도 새벽까지 하는 곳은 우리 가게 주변에 없다”며 “근처 아파트 주민이 밤늦게 내려와 새벽까지 술 한잔하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아 차별화가 좀 된다”고 말했다. 이 가게는 또 대구포, 한치, 치즈스틱, 골뱅이무침, 노가리 등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썬더치킨’은 기름의 질에 승부를 걸었다. “체인점이어서 본사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 기름을 깨끗하게 쓰는 게 최고의 서비스라고 본다”고 설명한다. 식용유 값이 더 들어가지만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이렇다보니 가격 하나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썬더치킨 주인은 “내가 가게를 인수를 했을 때만 해도 평일에 50~60마리를 팔았다”며 “지금은 치킨집 4~5개 정도가 더 생겼는데, 이렇게 나눠먹으니 잘되는 주말의 판매량이 50마리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썬더치킨 다른 지점은 치킨 한 마리에 8500원을 받는데 이 동네엔 치킨집이 너무 많다”며 “혼자 가격을 올리면 매출이 급락할까 두려워 3년 전 가격인 8000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ㅅ치킨 주인은 “재료비가 엄청나게 뛰었다”며 “동네 치킨집끼리 합의해 마리당 가격을 500원이라도 더 올렸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이 도로변에는 치킨집이 9곳이었다. 2008~2010년 사이 4곳이 추가로 문을 열었고 3곳이 문을 닫아 총 10곳이 겨뤘다. 그러던 것이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2011년 이후 한꺼번에 6곳이 늘었다. 이 과정에서 다시 2곳이 희생됐다.

OK치킨 주인은 “이 도로변에서 누군가가 문을 닫으면 또 다른 치킨집이 들어올까봐 매일 가슴을 졸이며 산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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