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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은 설·추석 이틀뿐… 온 가족이 하루 12시간씩 일한다”

‘통큰 통갈비’ 운영하는 이종영씨

오후 4시. 서울 홍대 인근 삼겹살 가게인 ‘통근 통갈비’를 운영하는 이종영씨(59) 가족이 가게에 달라붙는다. 이씨가 숯불을 피우기 시작하면 부인 박미숙씨(56)는 밥을 준비한다. 밑반찬은 틈날 때마다 미리 만들어둔다. 맏아들 승한씨(30)는 홀의 탁자를 닦는다.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오후 6시까지 이들은 말없이 맡은 일을 한다.

이때부터 세 식구는 8시간 동안 허리 한 번 못 편다. 새벽 2시가 되면 세 사람의 몸에는 고기 냄새와 손님들의 담배 냄새가 짙게 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가게 정리를 하면 새벽 3시를 훌쩍 넘긴다. 몸을 씻고 새벽 4시쯤 늦은 잠을 청한다. 온 가족은 하루 12시간 동안 말없이 함께 일한다.

이씨 가족은 1년에 딱 이틀 쉰다. 설과 추석 때다. 이씨는 “명절에도 가게들이 전부 다 문을 열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찾아오던 손님이 문 닫힌 가게를 발견하면 다른 집으로 갈 것이다. 그가 다른 가게에 질려 다시 이씨의 가게로 돌아오는 데 3개월가량 걸린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돈을 벌거나, 3개월간 손님을 놓치거나 둘 중 하나여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삼겹살 가게 ‘통큰 통갈비’를 운영하는 이종영 사장이 17일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삼겹살 가게 ‘통큰 통갈비’를 운영하는 이종영 사장이 17일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불황에 벌이는 시원찮고
임대료는 천정부지 올라
“우리는 파리 목숨” 한숨

이씨 가족이 휴일을 포기한 장사를 처음 시작한 건 26년 전부터다.

부부는 1986년 마포구 성산동의 지하 3평짜리 공간에 비디오 대여점을 차리며 자영업의 길로 들어섰다.

이씨는 이때 집에 가지 않고 하루 14시간 동안 가게에서 머물렀다. 시간 날 때마다 가게 구석에 놓인 긴 의자에서 눈을 붙여가며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게를 지켰다. 부인은 이씨 식사를 준비해 가게로 날랐다. 이씨가 잠깐 쉴 때면 당시 7살과 5살이던 아들들이 카운터를 봐줬다. 가게를 얻기 위해 빌린 돈 400만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휴일은 사치였다.

그래도 그땐 장사할 맛이 났다고 한다. 바빠도 돈 버는 재미가 있었다. 그게 자영업의 매력이라고 느꼈다. 2년 반 만에 가게는 지상 1층의 목 좋은 10평짜리 공간으로 옮겨갔다. 부인 박씨는 “월급쟁이가 50만~60만원 정도 벌 때, 우리는 200만~300만원은 벌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디오 대여점은 1993년 무렵부터 내리막길을 탔다.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띌 정도로 비디오 대여점이 많아진 게 결정타였다.

이씨 부부는 1996년 제2의 도전에 나선다. 비디오 대여점을 접고 인근에 분식점을 차렸다.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일했다. 이씨는 “당시엔 오전 9시에 나와서 숨 돌릴 틈 없이 일하고 오후 4시에야 점심을 먹었다”고 전했다. 배달은 밤 10시까지 계속됐다. 일손이 모자라 중·고등학생이던 아이들도 주말이면 분식집에 나와 일을 도왔다.

이씨는 2005년에 삼겹살집으로 전환했다. 당시 23살이던 맏아들에게 “남의 밑에서 일하며 돈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느냐”며 함께 장사할 것을 권했다. 승한씨는 한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터였다. 그 역시 아버지 말대로 영업직보다 번듯한 가게 하나 운영해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업종도 아들과 상의한 끝에 삼겹살로 정했다.

하지만 세 가족은 힘겨운 장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사하는 이들은 인건비를 아끼고 싶어한다.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 항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며 “파트타임 알바들에게 월 150만~160만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생들은 너무 짜다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 ”이라고 말한다.

경기 불황은 피부로 느껴진다. 아들 승한씨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음식점이 이를 가장 먼저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도 재료비가 점점 올라가니 수입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세 가족 한 사람 벌이는 일반 직장인 초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홍대 부근이 신흥 상권으로 주목받으면서 이 지역 상점들의 월 임대료가 400만~500만원으로 올랐다. 심지어 거리 중심가에 있는 한 가게는 주인이 바뀌면서 월 임대료가 38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이씨는 “우리는 파리 목숨”이라고 했다.

그는 “가게를 열 땐 권리금이 1억5000만원 정도였는데, 주인이 나가라면 이것도 못 받고 나가야 한다”며 “임대차보호법이 바뀌어 임대료나 재계약 걱정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새벽까지 일해도 벌이는 시원찮고 걱정만 늘어간다. 이씨는 “97년 구제금융사태 전까진 그래도 장사할 만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는 “지금은 장사 시작하면 열에 여덟은 망해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십중팔사(十中八死)입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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