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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몇 년 뒤면 퇴직… 50세 되기 전에 빨리 털자 했지요”

입력 2012.07.19 21:25

퇴직 앞두고 레스토랑 창업한 최정수씨

그의 가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남쪽 출구에서 나와 60-1번 버스를 타고 원미경찰서에서 내려 골목 몇개를 돌았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도토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공학박사 최정수씨(48). 자영업 생활 6개월째다. 까닭부터 물었다.

“기업에 더 있어 봐야 5년입니다. 하루 빨리 제2의 직업을 찾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는 잘나가는 전기공학자였다. 1995년 대기업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2000년에는 대학으로 이직해 4년간 일했다. 2005년 벤처기업에 참여해 부품 연구소장으로 재직했다. 직장생활은 바빴다. 최씨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이 20년 가까이 반복됐다”며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도토레’를 운영하는 최정수씨가 오징어 먹물 파스타에 들어갈 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경기 부천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도토레’를 운영하는 최정수씨가 오징어 먹물 파스타에 들어갈 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박사로 대기업·대학 이력
이탈리아서 석 달간 ‘수업’
“산전수전 다 겪고 있죠”

그저 그렇고 그런 엔지니어로 살다 직장생활을 마감하느니 새 일을 준비하자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준비된 아이템은 없었다. 여러 사업을 물망에 올렸다. 즐겨 먹던 음식인 냉면집을 떠올렸지만 ‘좋아하는 걸 사업화하면 망한다’는 속설을 듣고 포기했다. 재미 삼아 하던 양식 요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이탈리아에 건너가 요리 수업을 받았다. 피자와 파스타, 아이스크림인 젤라토 등 코스별 강좌를 들었다.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지만 서울 시내는 권리금과 보증금이 비쌌다. 목동의 10평짜리 가게는 권리금만 1억5000만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게 부천의 빈 상가건물 한 귀퉁이였다. 시공사 부도로 분양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상가건물이어서 싸게 얻을 수 있었다. 권리금도 없었다. 새로 개점하는 가게로서는 좋지 않은 입지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개점 비용은 1억5000만원. 20평 규모의 가게는 보증금 5000만원, 월세 320만원에 얻었다. 여기에 집기와 인테리어 비용 1억원이 소요됐다. 모아놓은 돈과 은행 대출이 각각 절반씩이다.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문을 열어야 하는데, 어디에 치즈 주문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수입업체에 일일이 다 전화해 샘플을 달라고 했죠.”

공산품 유통업자를 잡아야 한다는 말은 나중에야 들었다. 원재료인 밀가루와 계란부터 나무젓가락, 식용유, 쌀까지 트럭으로 내려주는 업체가 있었다. 이들과 뒤늦게 거래를 텄다. 재고관리도 엉망이었다. 파프리카 한 상자를 8만원에 사들인 뒤 5개 쓰고 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싱싱한 재료를 찾아 새벽부터 여기저기 찾아다니곤 한다. 최씨는 “좋은 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를 써야 하는데 마진이 나오지 않는다”며 “평생 엔지니어만 하다 보니 그런 융통성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업전략 또한 빗나갔다. 이탈리아 정통 요리인 피자를 대표 음식으로 밀었지만 파리만 날렸다. 국내 소비자들은 피자를 간식으로 여긴다. 명품 식사로 소문이 나려면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최씨는 최근엔 파스타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6개월 정도 지난 요즘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식당 이름을 검색하면 음식을 칭찬하는 글이 제법 보인다. 그러나 아직 수익은 멀다.

연봉 2600만원을 지급하는 부주방장 한 명과 아르바이트생 2~3명을 쓰면 총 인건비가 월 5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월세, 전기요금까지 포함하면 고정비용이 월 100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단골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손익분기점까지 왔다. 이 때문에 최씨가 갖고 가는 월급은 아직 없다.

주5일제는 이제 ‘남의 떡’이다. 월요일 하루 쉬는데 물품 구매·관리까지 직접 챙기다 보면 쉴 틈이 없다. 그나마 명절 때도 쉬지 못하는 다른 자영업자에 비하면 파격적인 휴식에 가깝다. 그는 “부모님이 ‘편하게 먹고 살라고 열심히 가르쳐놨더니 기껏 식당이냐’고 하신다”고 말했다.

최씨는 식당 근처에 새 지하철역이 들어설 계획이란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동인구가 늘어나야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최씨는 “남들이 안 간 길을 개척해가는 즐거움이 있다”며 “이 가게를 1호점 삼아 2, 3호점, 나아가 일본, 이탈리아 현지에까지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은 동아리나 취미 활동이 아닙니다. 생업 전선이죠. 남의 주머니 속에서 돈을 빼내와 내 음식과 바꿔야 합니다. 저도 안전한 길만 가봤지 험한 꼴은 안 보고 살았잖아요. 산전수전 다 겪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나중에 철학관 하나 차려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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