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다비드 세르방 슈레베르 지음·권지현 옮김 | 중앙books | 227쪽 | 1만3000원
암환자는 행복주의자다. 암 선고 후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잦아들면 하찮은 것들에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행복감은 태풍이 지난 후 찾아오는 청명한 하늘과 맑은 대기가 주는 느낌과 흡사하다. 살갗에 닿는 바람결, 구름 한 점도 더 없는 행복감을 준다. 암환자에게는 삶 자체가 환희이기 때문이다.
암환자 슈레베르도 마찬가지다. 그는 31세에 뇌종양이 발병, 19년 만에 암이 재발한다. 의사는 기껏 살아봐야 18개월이라 한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며 마지막 하고 싶은 말들을 틈틈이 적었다. 책은 말기 암환자의 유언 같은 투병기이다. 하지만 극심한 두통과 마비 증세 속에서 써낸 글이지만 삶에 대한 행복감과 희망이 가득하다. ‘암환자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웃지도 못한다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태도다.
슈레베르는 암 같은 불행을 ‘방안의 코끼리’라는 영어 표현에 빗댄다. 보이는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눈앞의 코끼리를 코끼리라 부를 수 있어야 하듯 불행도 꺼내놓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생일날 친구와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병세를 자세히 알렸다. 그는 또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특혜’라고 말한다.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경우에 비하면 운이 좋다는 의미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듣고 싶은 음악 목록을 만든다. 암 재발 후 가족과 친구를 만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연민과 동정은 사절이다. 죽음을 앞둔 자의 우울과 불안은 찾아 보기 힘들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회는 있다. 자만에 빠져 일에 과욕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방송과 집필로 유명세를 탔고,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했다. 암 예방법 등을 담은 체험서 <항암>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암을 잘 다스려 왔다고 생각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일에 매달려 건강을 자만하기 시작했다며 아쉬워했다. <항암>에서 암환자에게 중요한 것이 ‘평온한 삶’이라고 강조했음에도 그 자신은 몸의 평온함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병상에서 그가 회상한 인물 가운데 ‘용감한 사람’이 유독 많다. 난치병을 앓지만 항상 웃던 소녀, 학생시절 나치 점령 프랑스 학교에서 나치 깃발을 보란 듯 뽑아버린 아버지 등. 슈레베르는 이들을 통해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자 했다. 의사였던 까닭에 슈레베르는 많은 환자를 만나며 암환자로서 자신도 정신적인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환자들에게 감사했다.
슈레베르는 지난해 7월 숨을 거뒀다. 몇 개월 후 출간돼 유작이 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전혀 무겁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