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하는 4인의 ‘자영업자로 산다는 건’
“지금은 ‘뼛골 빠지게 일하는 놈’으로 바뀌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본사 회의실에서 자영업자 집담회를 가졌다.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해법은 무엇인지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집담회에는 편의점을 15년간 운영하다 지난해 문을 닫은 안경원씨(54), 공덕시장 상인회장이자 과일상을 운영하는 박종석씨(53),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이모씨(46), 지난 6월 커피전문점을 연 청년창업자 장기형씨(29) 등 4명이 참여했다. 이씨는 얼굴과 이름을 가려줄 것을 부탁했다.
4명의 진단은 엄혹했다. 그들은 자영업자들이 벼랑에 서 있는 차원을 넘어 벼랑에서 추락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 소상공인의 상권 80% 이상을 대기업이 장악했으며 이 과정에서 거대자본의 힘을 실감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뭉쳐야 산다’는 절박감에서부터 자영업 영역 보장, 자영업 비례대표 후보의 필요성, 선거 뒤 자영업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낙선 운동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나왔다.

자영업자인 안경원, 박종석, 장기형, 이모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앞에서 자영업의 실상과 해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씨는 얼굴과 이름을 가려줄 것을 요청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자영업도 양극화 심해… 시장 뒷골목에 가 보면 진짜 힘든 삶 수두룩
유명 프랜차이즈 운영 보기엔 그럴 듯해도 결국 빛 좋은 개살구
■ 벼랑에 선 정도가 아니라 추락 중
-모두들 자영업 최일선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듣고 싶다.
박 = 우리는 경기의 바로미터로 ‘작은 술집’을 친다. 경기가 안 좋으면 작은 술집이 가장 먼저 망한다. 술집에서 과일안주를 판다. 한때 내 가게의 과일이 들어가는 집이 40~50군데나 됐다. 하지만 내가 과일을 공급하던 가게는 지금 거의 다 망했다. 자영업자 중 직종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택시 운전기사로 바꾼 친구도 두 명 있다.
안 =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바닥’이다. 바닥도 보통 바닥이 아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는데, 최근 어느 토요일엔 손님을 딱 한팀 받았다고 하더라.
이 =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프로모션을 계속 진행하니까 매출이 많이 줄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업 마진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임대료 등 유지비용은 상승하고 본사에 지불하는 로열티와 인건비도 많이 올랐다.
박 = 경향신문 기획 제목이 ‘자영업자, 벼랑에 서다’이다. 그거, 늘 내가 하는 얘기다. 정말 벼랑에 서 있다. 자영업도 양극화가 심하다. 용문시장이나 우리 시장 뒷골목에 와 봐라. 진짜 힘들게 사는 게 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문제점을 제기하고 대응할 정도면 약자도 아니다. 밝혀지지도 않은 약자가 너무도 많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다.
안 = ‘자영업자, 벼랑에 서다’가 경향신문 기획 제목인데, 나는 벼랑에 서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15년간 유명 프랜차이즈 편의점과 개인편의점을 했지만 빚만 남았다. 은행에서는 집을 경매에 넘긴다고 한다. 요즘 은행이라든지 금융당국들의 모럴 해저드를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빨리 부채를 정리하고 새출발 했으면 한다.
-원인을 진단해 보자.
장 = 젊은 세대로서 말씀드리자면, 재래시장의 경우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같다. 젊은 세대는 재래시장에 안 간다. 대형마트에 가면 과일도 개별포장돼 있어서 깔끔한 느낌을 준다. 마트하고 차이가 커졌다고 하는데, 격차를 어떻게든 메우려 해야 한다.
박 =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이다. 이미 대기업이 치고 들어와서 재래시장이 성장도 하기 전에 박살났다. 조금만 더 장사하다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예전엔 거리에 유명 메이커 대리점들이 다 있었다. 시장 안에도, 시장 근처에도 있었다. 지금은 하나도 없다. 다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으로 가버렸다.
안 = 젊은 사장님 얘기를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처럼 망한다. 나도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서 ‘이건 노예계약’이라고 느꼈다. 그때부터 독립할 생각했는데 자금이 한 두 푼 드냐. 그래서 가게 위치도 A급 못 얻고 B급 얻고 그랬다. 열심히 했는데, 자금이 뒷받침 안 되니까 서서히 기울었다.
박 = 처음에 공덕시장서 일하기 시작할 때 과일가게가 11개 있었다. 나도 젊을 때 산지에서 직접 물건을 떼 오고 열심히 노력해서 시장 안에서 1등 했다. 그런데 공덕시장 자체가 망가져버리니 그 안에서 1등을 해도 의미가 없다. 대기업이 거대 자본 가지고 한 번 망가뜨리자 모든 게 끝나버렸다.
■ 소상공인 상권 80%가 대기업에
-프랜차이즈 점주 하는 건 어떤가.
박 = 나는 프랜차이즈를 싫어한다. 체인점 자체가 먹이사슬처럼 돼 있어서, 결국 본점이 모든 걸 장악해서 빼앗아가고, 점주는 혜택을 볼 수 없는 구조다. 예전엔 동네에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면 애들 대학 보내고 온가족이 먹고 살았다. 지금은 편의점 하나 운영해서는 못 먹고 산다. 그렇다고 편의점 매출이 낮은 것도 아니다. 가장 고가로 물건을 팔고, 또 알바비는 가장 싸게 주는 곳 아니냐. 그 차익은 다 어디로 가고 점주들은 힘들어하나.
안 = 유명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5년 운영해봤다. 3개월도 안 지나 답이 나오더라. 약관이 불공정하게 돼 있다. 편의점은 매출이익의 30~35%를 로열티로 줘야 한다. 점주들은 인건비, 관리비 하다보니 알바생들에게 본의 아니게 열악한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공정위에 가서 편의점 간 영역 문제, 또 약관 문제를 제기해봤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계약을 어떻게 터치하느냐고 말하더라. 본사는 점주들을 압박해서 돈 남기고, 장사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사업 전체를 다른 대기업에 팔아먹는다. SSM도 그렇고, 대기업 행태를 보면 정부와 시민단체, 언론에서 감시 안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들 거다.
박 = 처음엔 우리 유통구조가 백화점과 재래 소상공인의 두 개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거대 자본은 백화점밖에 없었다. 그 때는 소상공인들이 늦게까지 영업하지 말라고 해도 새벽 두 세시까지 장사했고, 벌이도 괜찮았다. 그런데 대형할인점이 등장했다. 그리고 편의점이 뒤를 이었다. 처음엔 편의점에서 물건을 굉장히 싸게 팔았다. 그렇게 해서 동네 구멍가게를 다 무너뜨린 뒤, 홀로 남으니 비싸게 받고 물건 판다. 이젠 국내 유통 소상공인들이 있던 상권 80% 이상을 대기업이 장악했다.
이 = 본사에서 관리하고 지도감독하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브랜드나 품질관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본사 직원들이 수립하는 방침은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갈수록 기고만장해진다. 가맹점주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점점 잊게 되는 것 같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본사 기준에 맞추다보면 뼈 빠지게 일해야 현상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간다. 브랜드가 있으니 돈 많은 자영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안 = 유명 프랜차이즈 점주들도 결국 빛 좋은 개살구지 뭐.
-본사 측의 불합리한 점을 예로 들어달라.
이 = 판촉 행사를 본사 차원에서 진행한다. 끼워주기나 할인 등이다. 그러면 매출은 늘어난다. 하지만 개별 점주 입장에서는 영업이익률이 반으로 떨어진다. 우리의 이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본사의 매출 향상만 고려하는 거다. 재료비를 깎아주지도 않는다. 점주들과의 논의는 늘 생략된다.
안 = 이 사장이 상황을 빨리 깨우쳐야 될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조지면 이익이 더 나온다’고 생각한다.
장 = 내 생각은 다르다. 1년간 편의점 슈퍼바이저로 일했다. 유통업과 경영학도 공부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본사가 판촉 행사를 하는 건 숨어있는 고객을 끌어오겠다는 차원 아닌가. 본사에서 가맹점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 잘못된 게 아니라 가맹점이 잘못됐다고 본다. 준비 없이, 계약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돈만 들고 가서 쉽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맹점의 개념이, 점주가 본사에 귀속된 직원과 마찬가지 아닌가.
이 = 본사의 순기능은 분명 있다. 그러나 가맹점주는 직원이 아니다. 본사가 자본력이 부족하니 투자자, 동반자를 모은 것이다. 개별점주를 종 부리듯 하면 안 된다. 따라갈 수는 있되 무조건 따라오라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본사가 지나치게 개별 가맹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견도 전혀 반영해주지 않는 게 문제다.
장 = 문제가 많은 게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는데도 가맹점 하려고 줄을 서 있다는 건 분명하지 않나. 나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만들려 하고 그 작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외국 다니면서까지 준비를 했다.
안 = 부럽다. 나이도 젊은데, 사업수완이 있는 것 같다. 잘 되길 바란다. 악덕 프랜차이즈 같은 모습은 배우지 말고,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회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 현금 거래 위주 업종은 돈 많이 벌어도 금융권 신용도 낮아
서로 간의 영역 보장 등 정책적으로 대책 필요… 자영업자들도 힘 모아야
■ 쓰나미 오는데 수영 잘한다고 사나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가.
안 = 나같이 문 닫고 빚진 사람들이 많으니 많이 악화됐다.
이 = 박 사장님, 어디 ‘상인회장’이라고 하면 예전엔 지역 유지급 아니었나요.
박 = 예전엔 ‘공덕시장 가면 복사뼈 까진다’고 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자꾸 부딪치니 다칠 정도란 뜻이다. 그 때는 전통시장에 가게 하나 있으면 잘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장 경기가 과거의 10~20% 수준으로 몰락해버렸다. 내가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쓰나미’ 오는데 나 혼자 수영 잘하면 된다고 자신하는 격이다.
이 = 인쇄업을 하다 외식업 프랜차이즈로 바꿨다. 10여년 전 동창회 나갔을 때 친구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인쇄업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충 “자영업 같은 거야”라고 덧붙이면 열심히 일하는 녀석쯤으로 인식됐었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IMF 겪으면서도 잘 버텨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영업자라고 하면 ‘어디 기댈 곳도 없이 뼛골 빠지게 일하고 있는 놈’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장 = 솔직히 업종 나름이다. 친구가 복사집을 열어서 잘 되는데도 시선이 안 좋다. 나는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우와’ 하는 시선으로 본다. 사회적인 허세가 심해졌다는 게 문제다. 젊은 사람들이 편하고 좋은 곳만 찾을 게 아니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다만 자영업자의 (금융권) 신용도는 좀 안 좋더라. 자영업 신용을 높게 쳐주지 않는다. 은행에서는 카드전표매출에 따라서 체크한다. 현금이 많이 들어와도 신용도에는 도움이 안 된다. 현금 50만원에 카드 10만원 매출이면 그 사람 신용도는 10만원짜리인 셈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으면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나.
이 = 비오는 날엔 음식 배달주문이 많다. 밖에 잘 안 나가게 되니 주문수량이 늘어난다. 그런데 SSM 강제 휴무제가 실시됐다. 그 전엔 마트 등 밖에 나가서 군것질한 사람들이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런데 어느날, SSM 휴무날이었는데 비까지 오니 주문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폭주했다. ‘정책의 영향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자영업자들 숫자가 포화상태라고는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분들은 잠시 어려워도 버티고 나간다. 그런데 버티지 못하게 되는 건 정책적인 것에도 책임이 있다. 뒷받침이 없을 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어디가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장치화돼 있으면 좋겠다.
장 = 서로간의 영역을 보장해 줘야 한다. 로또 가게는 몇백m에 하나인 것처럼,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특히 동일 회사의 가맹점만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하면 영역권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래시장 활성화 또한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보장해줘야 한다. 재래시장 영역은 보장해주고, 그 밖에서 하게 한다면 시장포화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 전통시장은 딱 그 부근의 30m만 보호해준다. 아까 이 사장이 말씀하셨듯, SSM 의무휴일제를 하니까 그 주위가 좋아지더라. 외식 프랜차이즈도 좋아지는데 시장은 어떻겠나. 현금을 어디에 딱 찍어서 지원해주는 건 나중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 자영업자들의 힘 보여줘야
-자영업자는 경제활동인구의 30%에 이르지만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이 = 지난 총선 때 국회의원 한 사람이 시장을 찾아와 “자영업자 숫자가 많이 늘어나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줄어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상인들에게 욕 먹었다. 해결책이나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여당 국회의원의 말이 공허하게 들려 화났을 것이다. 장사가 안돼 접고 나간다면 그에 대한 대안이 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출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 등 대안을 마련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자영업자가 정말 하층 노동자급으로 내려왔다.
박 = 자영업자 수가 문제라고 하는데, 자영업자들은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또한 소비하는 사람이다. 선순환으로 잘 돌아간다면 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기업이다. 싹 쓸어서 자기 창고에 넣어버린다는 게 문제다.
안 =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무척 높다. 대기업이 탐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도록 뭉쳐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지금까지는 덜 뭉쳤다. 같은 업종이라도 좀 모여서 얘기 좀 해야 한다. 지난 총선 때 자영업자 비례대표가 한 명도 안 뽑혔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그만큼 파워가 없다. 총선 때 보니까 박근혜와 악수하려고 난리더라. 친재벌쪽인데, 이해가 안 된다.
장 = 여당이든 야당이든 움직여서 자영업자 대표의 얘기를 듣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표를 뽑아서 뭉쳐서 건의를 하면 30%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정치적인 참여가 이뤄질 것이다. 선거 후 자영업에 대한 약속을 안 지키면 다음에 안 뽑아줘야 약속을 지킬 것이다. 3분의 1의 목소리를 안 들을 수는 없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