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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과 삶

전북지역 8곳, 스러진 절터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불심을 찾다

▲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지음 | 알마 | 344쪽 | 2만2000원

생공설법 완석점두(生公說法 頑石點頭). 중국 동진의 고승 축도생에 얽힌 고사에 나오는 말이다. 생공, 즉 축도생이 설법하자 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의미다.

축도생은 불력을 증명하려 사람 대신 돌들을 모아놓고 설법했다. 설법 도중 돌들이 하나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돌들이 설법에 감응해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보였다. 축도생 이야기는 불교의 감화력, 성불에 대한 것이다.

저자 이지누는 고구려 보덕화상이 세웠다는 완주 경복사터에 서서 축도생을 떠올렸다. 보덕화상은 도교의 발흥에 맞서 지금의 완주에 경복사를 짓고 불력을 일으키고자 애썼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종교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한 고승이다.

저자가 무르익은 봄에 찾아간 경복사터는 꽃 천지였다. 적막한 절터에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지누는 문득 깨닫는다. 축도생이 돌들에게 했듯 보덕화상도 세월을 초월해 꽃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음을. 꽃들은 이에 감응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책과 삶]전북지역 8곳, 스러진 절터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불심을 찾다

경복사는 흔적도 없지만 해마다 새로운 꽃이 피고 그 꽃들이 흔들리듯 보덕화상의 법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지누의 생각이다.

책 제목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는 불법의 불멸성을 함축하는데 책 내용을 제대로 포착했다.

책은 전북 지역 폐사지 8곳에 대한 답사기이다. 남원의 만복사터, 개령암터, 호성암터와 완주의 경복사터, 보광사터 그리고 부안 불사의방터, 원효굴터, 고창 동불암터가 그곳이다. 백제의 땅 전북 폐사지 특징은 미륵 신앙이다. 그 까닭에 암벽에 부조한 마애불이 많이 등장한다.

유교의 나라 조선이 불교를 배척하면서 허물어뜨린 사찰이 적잖다. 폐사지는 이런 역사를 증언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절터에 무덤이 자주 눈에 띈다. 절이 들어선 자리는 명당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겉으로 불교를 배척했던 유교 선비들이 흔하게 절터에 묘를 쓰곤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진 찍는 글쟁이 이지누는 깊은 불심과 인문학적 탁견으로 절터를 누볐다. 절터를 묘사하는 눈은 그윽하고 들추어내는 역사는 다채롭다. 그의 답사는 순례 혹은 만행에 가까워 보인다. 문장 곳곳에 깨달음과 명상의 여운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길조차 없는 절터를 찾아가는 것은 때로 고행이다. 마치 부처의 흔적을 좇는 순례자를 연상케 한다.

그는 “막행막식을 일삼던 비루한 몸을 이렇듯 만행과 순례의 길로 나서게 한 것은 부처님”이라고 했다. 폐사지 순례는 참회의 걸음이자 부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만복사터에 선 이지누는 매월당 김시습을 무척 흠모한다고 고백했다. 승과 속을 오가며 만행을 거듭한 김시습. 이지누는 한때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 쏘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절터 만행에 나선 그의 모습이 김시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발로 쓴 글의 미덕이 잘 드러나는 곳은 원효굴터 답사기이다. 이지누는 원효굴터에 있는 우금암 주변을 둘러보다 우금암이라 바위에 새긴 각자를 발견했다. 국내에 보고된 적이 없는 각자라고 한다. 새로운 유적의 발굴인 셈이다.

그는 또 조선시대 강세황이 그린 ‘우금암도’가 실제와 다르다며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대상에 대한애정과 성실함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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