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사과’ 회견 분석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4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 인혁당 사건 등을 과오로 규정하고,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한 것이다. 야당 측도 사과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여론에 밀린 사과인 데다 100% 완전한 사과가 아니고, 또 실기했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향후 구체적인 화해·통합 행보 등 사과의 진정성을 뒷받침할 실천이 숙제로 다가왔다.
오전엔 사과, 오후엔 ‘말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왼쪽)가 24일 오후 부산 남천동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 선대위 출범식에서 대학생 당원들에게 이끌려 나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다. 이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과거사를 사과하고 오후에 말춤 추는 건 좀 그렇네 머쓱”이라고 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박 후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비판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 연합뉴스
(1) ‘박정희 시대’의 과오, 첫 공개적 인정
박 후보의 과거사 언급은 아버지 박 전 대통령 시대의 성격 규정, 개별적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과 등 양 갈래로 이뤄졌다. 유족들에게만 유감을 표시하고 5·16 쿠데타 등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던 입장을 고수했다. 이번에는 과거사도 ‘헌법 가치 훼손’ ‘(민주) 정치발전 지연’이라고 자리매김했다. 기존 ‘박정희 시대’ 공과를 동급으로 나열하던 것에서 이번에는 ‘과’에 무게를 뒀다.
현재 학계나 일반적 상식의 수준에 높이를 맞춘 것이다. 딸이 아닌 “새누리당 대선 후보 입장”에 따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부인하게 되는 논리적 근거는 2가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와 “대선 후보로 나선 이상 냉정하고,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후보는 회견에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유신), “더 이상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5·16)는 아버지의 육성을 인용했다. 아버지의 목적은 좋았고, 결과적 헌정질서 파괴가 한국 현대사의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다는 양해를 구하면서도 공적 역사에서 과오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다. 아버지 스스로도 그것을 알았기에 그런 육성을 남겼다는 점을 강조해, 딸로서 아버지를 ‘부인·부정’할 수밖에 없는 알리바이로 삼은 것이다.
이 사과는 표면적으로 아버지를 벗어나 ‘정치인 박근혜’로서 홀로서기를 선언한 의미도 있다. 다만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아버지 육성을 빌려온 점에서 완전한 ‘극복’으로 갈 것인지는 향후 증명 과제로 남아 있다.
(2) 지지율 발목잡은 ‘과거사 늪’ 탈피 고육책
박 후보의 사과는 지지율 하락에 따른 고육책 성격이 짙다.
지난 10일 ‘인혁당 두 개 판결’ 발언 이후 2주일 만의 사과이다. 그사이 지지율은 위기 수준으로 하락했다. 당 안팎의 압력도 임계점에 다다랐다. 그만큼 반전이 절실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여론조사 양자 대결에서 50%를 코앞에 뒀던 박 후보 지지율은 과거사 논란 이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확정, 무소속 안철수 후보 출마 등 이벤트 효과와 겹쳐지면서 4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양자 대결에서 야권 후보 모두에게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사과와 함께 “앞으로 대통합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한 것은 그런 이유다. 대선 후보 선출 후 봉하마을 방문 등 야심차게 시작한 대통합 행보가 무위로 돌아갔다. ‘미래·통합’을 통해 중도층으로 지지를 넓혀가겠다는 대선 전략이 부도 직전이라는 판단도 배경이다.
그 점에서 대선 행보에서 보수층 여론과 지지보다는 중도층을 우선 선택한 측면이 엿보인다. 바로 과거사 정국 때문에 그의 지지에서 이탈한 이들의 요구를 먼저 달랜 것이다.
국민 대통합의 진정성 획득을 위해서도 보수·우파로의 ‘유턴’은 맞지 않다. 당내에서 계파와 상관없이 “고정 지지층을 생각하면 손해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국민 상식과 눈높이에서 역사를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잘한 것 같다”(조해진 의원)는 평가는 그 때문이다.
(3) 제때 놓쳐 효과가 반감…인정에 호소
사과 시기를 놓고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가슴으로 말한 것 같다”(이정현 공보단장)고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여론에 떼밀려 사과한 모습이 됐다. 그만큼 그 전달력이나 공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핵심 당직자는 “(먼저 사과한) 홍일표 전 대변인을 경질한 뒤이고, 지지율이 뒤져 표 때문에 (사과)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타이밍상 아쉽다. 100점짜리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처럼 늦어진 이유를 ‘고뇌’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제 향후 아픈 과거사 치유 행보가 중요해졌다. 박 후보 스스로 “아까 다 말씀드렸는데 제 진심을 다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과의 진정성을 가름하고, 과거사 논란이 재연될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이날 사과가 아버지 시대에 대한 총괄적 평가·사과였다면, 피해자·유가족들 화해·명예회복이나 장준하 선생 의문사 조작 의혹, 정수장학회 문제 등 개별적 사안들을 정리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구체적 과제들이 남은 것이다. 박 후보는 이를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풀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남의 손’에 넘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