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위 등 조사 기록
정수장학회에 대한 공식적 기록·판단은 현재로선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조사와 그에 기반을 둔 법원의 판결이 전부다. 이들 기관은 모두 군사쿠데타 세력의 사실상 강탈이었고, 이후 사유재산처럼 관리돼 왔다고 결론낸 바 있다. 이에 따라 헌납이 원인무효이므로 사과와 손해배상 등 시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MBC와 부산일보 주식을 보유한 정수장학회는 단순히 하나의 재단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 언론 장악 공작과 공권력 남용 상징으로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수장학회 처리는 법적 지분 정리 등을 넘어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제자리 찾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바로 언론판 과거사 사과·정리 대상인 것이다.
당시 이들 기관이 어떤 점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을지 진실위 조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강택 전국언론노조위원장(가운데) 등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공동대책위원회 소속단체 대표들이 16일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앞에서 ‘MBC 주식 불법 매각 시도’에 항의하며 농성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 기부승낙서 날짜조차 위조된
쿠데타 세력의 강탈로 결론
“사과와 손해배상 조치 필요”
진실위에 따르면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사건’은 부산의 대표적 기업인이자 재선 국회의원(2·3대)인 고 김지태씨가 1962년 부정축재 등 혐의로 구속돼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 주식 각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 부일장학회 토지 10만여평을 헌납한 것을 말한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정축재처리요강’에 따라 구속된 기업인은 김씨와 이병철 전 삼성 회장 등 15명이었고, 이들 중 재구속까지 돼 재산을 헌납한 경우는 김씨가 유일하다.
당시 김씨를 향한 압박은 전방위였다. 일본 체류 중이던 김씨 귀국을 위해 중앙정보부 부산지부는 1962년 3월27일 부산일보 임직원 10여명을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고, 다음달엔 김씨의 아내 송혜영씨를 밀수 혐의로 구속했다.
결국 김씨는 부산일보 주필이던 황모씨 권유에 따라 4월20일 귀국했고, 김씨는 부정축재처리법 등 9개 혐의로 바로 구속됐다. 군 검찰은 다음달 김씨에게 7년을 구형했다.
주필 황씨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 전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창으로 1960년 박 전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자주 어울렸다.
황씨는 김씨가 수감된 후에도 박 의장과의 사이에서 중개역을 맡았다. 그는 “부일장학회는 재산 내놓고 이사장 맡으면 공익사업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그러니 언론 부분은 내놔야 안되겠나”라며 김씨를 설득했다. 김씨는 구형 다음날인 5월25일 신직수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률고문에게 언론사 ‘포기각서’를 제출했고, 다음달 20일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기부승낙서에 서명날인했다. 김씨는 이틀 뒤인 22일 박 의장 지시로 석방됐다.
진실위는 이 기부승낙서의 서명 날짜가 20일에서 30일로 변조된 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필적 감정 등을 통해 밝혀냈다. 김씨의 석방이 25일인 만큼 당시 기부가 김씨 석방 이후 이뤄진 것으로 조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김씨의 재산 헌납이 자발적이 아닌 구속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이뤄진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됐다.
이와 함께 진실위는 전 과정에 박 의장 의사에 따라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날짜 변조도 한 부분이지만, 박모 전 중정 부산지부장이 2000년 모 잡지에서 ‘박 의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부분을 주목했다. 박씨는 이후 논란이 일자 이 같은 발언을 번복했지만 당시 박씨의 증언이 정수장학회 파문이 불거지기 전 나온만큼 신빙성이 있는것으로 봤다.
김씨의 주식·토지 헌납액은 당시 돈으로 8527만여원에 이른다.
그중 토지 10만여평은 부일장학회 기본재산이었으나 박 의장 지시로 설립된 5·16장학회는 이 토지를 1963년 7월 국방부에 무상 양도했다. 이 토지의 가치는 당시 헌납 재산의 절반이 넘은 5039만여원에 달했다. 국방부는 이듬해 김씨에게 기부에 대한 감사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진실위는 장학회 설립·운영도 박 의장과 측근, 친인척들이 해온 것으로 결론냈다. 박 의장은 장학회 설립부터 지시했을 뿐 아니라 이사진과 소유 언론 3사 사장에 주로 대구사범 출신 측근들과 친인척을 임명했고, 그의 사후엔 유족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결론을 내면서 헌납의 강제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합리적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회환원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