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역사관에 독선적 의사결정 방식 문제
측근은 고언 대신 두둔… “머슴만 있다” 자조
‘주요 현안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법원 판결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다. 고언은 하지 않고 ‘말씀’에 주석 달기 바쁜 측근만 곁에 두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선 후보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인혁당, 정수장학회에 대한 그의 언행을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단순 실수로 치부하던 목소리가 자질 시비로 번지고 있다. “검증된 유일한 후보”라는 자평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의 사실관계 오인은 결정적으로 그를 궁지에 몰고 있다. 오인이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 과정에 대해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원고패소 판결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번도 아닌 세 차례나 반복했다. 박 후보 자신도 이를 의식한 듯 22일 기자들과 만나 “표현의 오해가 있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2일 서울 역삼동 전국택시연합회관에서 택시운송사업주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정수장학회 최대 쟁점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을 놓쳤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평소에 신문만 읽어도 그런 소리 못한다”(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오인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박 후보는 지난달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논란에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라고 말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유신정권 때 1975년 유죄 판결이 났지만, 2007년 재심으로 무죄가 내려졌다.
반복되는 착오 배경에는 박 후보의 고착된 역사관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또 중요 현안을 혼자 결정하는 의사결정 방식도 문제다. 실제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때 대부분의 측근들은 ‘전향적’ 기조를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퇴행적’으로 나오자 할 말을 잃었다.
측근들은 이런 후보의 약점을 교정하는 ‘조언자’가 아니라 정해진 방침을 충실히 실행하는 ‘행동대장’일 때가 많다. 정수장학회의 실상과 파장을 국민 눈높이로 보고했는지 의문이다. 21일 기자회견이 끝난 뒤 측근들은 기자실을 돌아다니며 후보 발언을 무한 반복했다. 22일에는 전날 박 후보가 밝혔듯 고 김지태씨를 친일파, 부정축재자로 몰아붙이는 데 열중했다. 북방한계선(NLL) 논란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한 데 이어 김지태씨까지 ‘악인’으로 몰면서 새누리당은 ‘고인 네거티브 전문’이라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박 후보가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작은 실수’라고 둘러대는 습관도 측근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앞서 인혁당 ‘두 개의 판결’ 발언 직후에도 측근들은 이구동성으로 “인혁당 1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오해한 것”이라고 두둔했다. 박 후보가 과거사 사과 회견에서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발음하자 ‘프롬프터’를 준비한 실무자 실수라고 둘러댔다가, 나중에는 “후보가 긴장해서 말이 꼬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는 “머리 쓰는 전략가도, 고언하는 충신도 없고 오직 충성하는 머슴들만 있다”고 자조했다.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서 ‘선거의 여왕,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준비된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