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바구니’ 낸 한홍구 교수
“MB 정권의 언론장악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언론장악이 있다.”
정수장학회를 다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새 책 <장물바구니>(돌아온산)를 보면 두 정권의 비슷한 행태에 놀라게 된다. 이승만 정권이 경향신문 폐간 조치 등 ‘정공법’을 택했다면, 박정희는 언론사주의 경영권 박탈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1962년 김지태로부터 부산일보와 MBC를 강제로 빼앗고, 1966년에는 경향신문을 강제 매각시켰다. 부산일보·MBC 사장은 대구사범 동기생이 차지한다. 강탈한 언론사들은 ‘5·16장학회’를 통해 관리됐고, 박정희 사후 ‘정수장학회’로 바뀐다. 정수장학회는 책 제목대로 ‘장물바구니’였던 셈이다. 한 교수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현재’의 문제라고 말한다. 올해 MBC 등 언론사 파업이 벌어지게 만든 척박한 언론환경도 여기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김지태의 부일장학회를 계승한 것이 아니며, 김지태는 부정축재 처벌을 피하려고 재산을 헌납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김지태를 친일파로 몰기도 한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조사했던 한 교수는 각종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토대로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김지태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했지만 오히려 일본인 교사의 만행을 지적하다 연행되기도 했고, 해방 직후에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승만 독재에 맞섰고, 4·19 혁명 직후에도 부정축재자로 몰리지 않았다. 5·16 쿠데타 뒤에야 이병철 등과 부정축재자로 몰렸으나 5억여환의 환수금을 모두 납부했다.
박정희는 1962년 김지태를 다시 한번 부정축재자로 몰아세운다. 한 교수는 그 이유가 “언론사를 탐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산일보는 경찰의 최루탄에 죽은 김주열의 사진을 특종보도하는 등 4·19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부산지역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정희로서는 이때 언론사의 위력을 실감했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가 자신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익재단’이라고 강변하며 50여년 동안 “3만8000명에게 장학금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전신인 부일장학회는 매년 4000~5000명에게 장학금을 줬는데 계속됐다면 지금까지 20만~25만명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박 후보는 1995~2005년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22억여원을 받았다.
한 교수는 “육영재단도 공익법인인데, 왜 형제들끼리 차지하려고 싸우는가”라고 반문한다. 1971년 대선에서 MBC 지방국 매각대금의 대선 사용 의혹이 제기되고,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정수장학회 소유의 MBC 지분 매각 문제가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도 ‘사유재산’의 방증이다. 결국 해법은 정수장학회 해체 후 새로운 공익재단으로의 출발이다. 5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책 출간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