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퍼드 기어츠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지역연구(Area Study)’라는 학문 분야 혹은 학문적 방법론이 성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명실상부한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한 미국이 세계전략적 필요에서 새로 구성해낸 학문 영역이 바로 지역연구라는 것이었다. 지역연구는 기본적으로 학제 간 연구를 표방했지만, 그 태생적 인연이나 방법론적 효용에서 볼 때 ‘인류학’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9세기 이후 ‘문명화의 사명’을 내걸고 식민지 지배의 선두에 섰던 학문이 바로 인류학이 아니었던가? 지역연구란 바로 그런 것이었기에, 그것이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지배적인 인식의 힘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냉전적 세계전략에 동원되고 있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동남아시아(South East Asia)는 미국이 군사전략적인 의도로 구획하고 명명했던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였다. 물론 이런 구분에 역사적인 혹은 문화적인 공통성이나 필연성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연구에는 인류학 연구자로서 나중에 뚜렷한 학문적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성과로 클리퍼드 기어츠의 발리 섬을 대상으로 한 ‘극장국가’ 이론, 제임스 스콧의 농민저항 연구와 ‘도덕경제’ 이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주의 연구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지역연구 혹은 인류학이라는 좁은 영역을 넘어서는 폭넓은 학문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일조각)는 주로 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했던 클리퍼드 기어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저작이다. 이 책은 자바섬을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의 사회경제적 역사를 생태적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으로, 1963년에 출간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자바섬을 중심으로 한 내(內)인도네시아와, 여타 3개의 큰 섬을 아우르는 외(外)인도네시아라는 두 가지 형태의 큰 생태계로 나누어진다는 점을 기어츠는 우선 강조한다. 그리고 미작이 중심을 이루는 자바 섬 즉 내인도네시아의 농업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내향적 정교화’(Involution)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내향적 정교화로 번역되어 있는 인볼루션이란 개념은 어떤 현상을 지칭하는 것인가? 자바의 미작지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매우 작은 규모의 벼농사에 흡수됨으로써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증가하고, 이후 전작지역의 확대와 경작의 다양화에 도움을 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생활수준이 안정되거나 매우 조금씩 상승하는 경향을 띠게 되는 바, 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인볼루션이다. 자바섬에서는 서구 지배 이후 늘어나는 인구를 거의 전부 흡수하면서도, 일정한 수준의 한계노동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인도네시아의 미작경영 형태는 일단 완성되었지만, 그후 새로운 유형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정교화’함으로써 ‘자기파괴적’이고 ‘정적인’ 확장을 거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바에서는 다른 저발전국가와는 달리 농촌 사회에서 계급분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으며, 늘어나는 인구압을 최고 수준의 노동집약화로 대응함으로써 ‘빈곤을 공유’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기어츠는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를 ‘노동 중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이를 통하여 인도네시아는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가능성을 낭비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어츠가 비록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정부의 수탈에 의하여’ 근대일본처럼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가 인도네시아 경제의 도약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화이론의 세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기어츠 연구의 이면에도 미국의 세계전략이 버티고 있는 것인가?
한편 인볼루션이라는 개념이 “한 체계가 안으로 말려들어감으로써 혼란스럽게 되고 결국은 퇴행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를 ‘퇴행’ 혹은 ‘퇴화’가 아니라 ‘내향적 정교화’라고 이 책에서 번역한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