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나온 주택, 2년 만에 32.5% 급증
금융권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집이 넘어가는 경매 건수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1만4816건으로 전년 1만3382건보다 10.7% 증가했다. 그러나 올 들어 11월까지는 지난해보다 19.7% 늘어나며 증가폭이 커졌다. 2년 만에 32.5% 급증한 셈이다. 10일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의 자료를 보면 금융권과 개인을 통해 나온 수도권 아파트 경매 건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2만1951건에서 지난해 2만5481건, 올 들어 11월까지 2만6382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달은 2930건으로 연중 최다를 기록했다.
경매 주택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지난달 말 잔액 기준 주택담보대출은 모두 394조9000억원에 이른다. 올 들어서만 7조9000원이 늘어났다.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말 0.95%에서 지난 8월 말 기준 1.32%로 늘어났다. 금융권에서 연체 4개월이 되면 바로 임의경매에 들어간다. 주택 경매는 경기에 후행한다. 금융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지난 6월 말 평균 50.5%로 지난해 말보다 2.4%포인트 늘었다. 제2금융권인 신용카드사는 73.0%, 저축은행 64.9%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가 올 들어 수도권에서만 1만80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행정법원 부동산경매법정에서 관계자들이 경매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에서 경매전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찬열씨는 “요즘 아파트 경매의 경우 평균 2회 이상 유찰되고 유찰 시마다 경매가가 20%씩 하락해 결국 집 주인이 담보대출액도 못 갚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집 빼앗기는 ‘저신용 채무자’ 늘어나
올 들어 경매에 넘어간 금융권 주택담보물건을 보면 서민층의 심각한 가계부채 현실을 알 수 있다. 감정가 3억원 이하 주택에서도 제2금융권의 비중이 컸지만 3억원 초과~6억원 이하에서도 제2금융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1.0%로 3731건에 달한다. 2010년에는 감정가 3억원 이하 기준으로 제2금융권의 3560건, 은행의 2076건이 경매에 넘어갔다. 지난해는 더욱 늘어나 제2금융권 4240건, 은행 2168건이었다. 3억원 초과~6억원 이하에서도 제2금융권의 비중이 컸다.

은행과 제2금융권 경매 비중은 감정가 6억원 초과~9억원 이하에서 역전된다. 은행권은 1000건, 제2금융권은 760건이었다. 가계부채 우려가 중산층에게도 전이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감정가 9억원 초과에서는 은행이 708건, 제2금융권이 481건이었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 7~10등급 저신용자가 지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32조10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중 1개월 이상 연체자 4만명 모두가 7등급 이하 저신용 채무자였다.
▲은행권 대책 별 도움 안돼 ‘있으나 마나’
개별 은행 차원에서 시행 중인 하우스푸어 대책 실적은 기대 이하에 머물고 있다. 우리은행이 지난 10월 말부터 시행한 ‘신탁 후 재임대(트러스트 앤드 리스백)’는 한 달이 지났지만 신청자가 3명뿐이다. 이 제도는 하우스푸어의 집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형편이 좋아지면 집을 되살 수 있도록 한 방안이 핵심이다. 신탁기간에는 연 15~17%의 고금리 대신 4.15% 정도의 임대료를 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은행 외 다른 금융사에 주택담보대출이 있으면 아예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진짜 하우스푸어인 다중채무자는 배제되는 셈이다. 여기에 주택 소유 욕구가 높은 국민 정서상 집을 넘기는 것은 최후의 단계에 이뤄지는 것이어서 대출자들이 ‘신탁 후 재임대’를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주택 힐링 프로그램’도 현재까지 신청자가 200명이 되지 않는다. “9000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던 당초 전망이 무색하다. 이 프로그램은 대출금을 갚기 어려운 사람에게 최장 1년간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2%로 깎아주고 1년 뒤 갚도록 유예하는 방식이다. 적게 낸 이자는 1년 뒤 몰아서 내야 한다. 연체이자를 한꺼번에 갚게 돼 자칫 이자폭탄을 맞을 수도 있어 실수요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금융당국 대책도 겉돌거나 ‘검토 중’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연체로 집을 경매로 내놓을 위기에 처한 이른바 ‘깡통주택’ 소유자들이 금융회사에 신청하면 경매를 3개월간 유예해주는 ‘경매유예제도’를 내놓았다.
지난달에는 은행뿐 아니라 보험업계 및 저축은행, 카드사 등으로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유예기간에도 연체이자가 붙는 데다 매수인이 경매 낙찰가 이상으로 가격을 제시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10일 현재 경매유예제도 신청은 단 3건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위주인 은행권 프리워크아웃(개인채무조정) 제도를 주택담보대출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프리워크아웃은 부도 위험이나 장기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의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신용구제 제도이다.
‘일정 액수 미만의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담보권자의 임의경매를 금지’하는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됐지만, 선거 국면에 본회의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