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문가들이 말하는 의문점
정보통신(IT) 업계 전문가들은 경찰의 ‘국가정보원 직원 불법 선거개입 의혹’ 중간수사 결과에 대해 필요한 수사를 대부분 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발표한 것으로 봤다. ‘추가 수사할 단서가 모자란다’고 해야 할 것을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작성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로 무리하게 결론을 비틀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은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상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달았느냐 여부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이 제출한 컴퓨터 2대에 저장된 인터넷 임시파일을 분석해 문재인·박근혜 후보 관련 댓글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 “임시파일 분석만으로는 한계”
경찰 수사 결과의 근거가 된 인터넷 임시파일은 컴퓨터에 설정해둔 용량이 다 차면 사라지는 데다, 접속한 모든 사이트마다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즉 컴퓨터에는 없지만 인터넷상에 게시물과 댓글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컴퓨터에 남아 있는 임시파일은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갱신돼 조작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 직원이 어느 사이트에서 댓글을 남겼더라도 나중에 같은 사이트 재접속을 반복하면 가장 최근에 방문한 페이지만 남는 ‘덮어쓰기’가 돼 증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국정원 직원이 혼자 방에 있던 지난 11~13일에 이렇게 데이터가 갱신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도 이날 브리핑에서 “같은 페이지를 또다시 열람하면 뒤에 열람한 페이지만 남게 된다. 이런 덮어쓰기된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어 분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데이터복구업체 명정보기술의 한 엔지니어는 “컴퓨터 검색만으로는 댓글을 단 흔적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정확한 수사를 위해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협조를 얻어 국정원 직원 컴퓨터의 IP(인터넷 주소)가 접속한 시간을 추적해 당시 댓글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국정원 직원의 ID와 닉네임을 40개나 알아냈으면서도 컴퓨터 분석 외에 인터넷 검색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 핵심 증거 스마트폰 확보 안 해
국정원 직원은 지난 9월부터 40개의 ID와 닉네임을 번갈아 사용해오며 인터넷에 접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경찰은 이 부분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해당 직원이 이용한 어머니 명의의 스마트폰을 통해 댓글을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해당 직원의 오피스텔에는 별다른 인터넷 접속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망에 접속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의 장비고유번호를 수사상 확보할 필요가 있었지만 경찰은 이에 무관심했다.
경찰은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어 스마트폰은 제출받지 않았다”며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볼 때나 (스마트폰을) 받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는 “당시 국정원 직원의 방에는 유선망이 깔려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면 해당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번호가 통신사에 남는다. 이를 토대로 인터넷 접속 사이트와 게시물 기록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