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후속책 미흡… 잇단 자살
박지원 “MBC서 출연 배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100% 대한민국’ 등 국민대통합을 국정운영의 최우선에 두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하지만 이 같은 언급이 무색하게도 당선 이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대선 이후 노동조합 간부와 시민단체 활동가 3명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하면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는 등 충돌 양상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하려면 산적한 갈등을 수습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불거지고 있는 분야는 노동이다.
지난 21일 울산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주야간 8시간씩 파업에 돌입했다. 대체인력을 투입한 사측과 비정규직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노조원과 사측에서 모두 40명 이상의 부상자가 생겼다. 이 충돌의 여파는 다음날 울산의 또 다른 노동자에게 미쳤다. 8년 전 동료 하청노동자의 자살을 곁에서 지켜봤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모씨(42)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씨의 동료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 과정에서 폭행당한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다 옛 기억이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8년 전 크레인 농성을 하다가 사측 경비대원들에게 맞은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다.
‘희망버스’로 이명박 정부 내내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한진중공업의 한 노조 간부도 지난 21일 절망 속에 극단을 택했다. 노조 조직차장이었던 최모씨(34)는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를 통해 사측이 청구한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철회할 것을 마지막으로 요구했다. 비정규직 문제,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운동가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최모씨(40)도 22일 서울 도봉동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박 당선인이 공약집을 통해 내걸었던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과 ‘사내 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의 공약이 노동현장에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노총이 성명서를 통해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합을 말하려면 노동 현안 해결부터 나서야 한다”고 밝혔지만 당선인 측은 묵묵부답이다.
지난 5년간 언론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방송계도 갈등이 끓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MBC는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지난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의 김재철 사장 해임안 부결 이후 재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사측에서 최근 대규모 경력직 채용에 나섰고, 노조는 이를 해고자 복직 등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현 경영진의 신호로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24일 국회 의원총회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MBC ‘윗선의 지시’로 방송 출연을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 오후 11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듀서로부터 전화가 와서 ‘윗선에서 박 전 원내대표는 좀 곤란하다고 해서(출연을 취소했다).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며 “마치 유신시대, 제5공화국이 부활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MBC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20·30대 젊은층과 50대 이상 연령층 사이에는 세대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는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청원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고, 반대 쪽에서는 ‘대학생 교련 교육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대통합은 단순히 다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다수결이나 힘의 논리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주류 중심의 질서에서 배제돼 있는 약자나 소수자들의 시선에서 출발해야 대통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박 당선인의 대통합이라는 표현이 자칫 어감상으로는 ‘통합해야 하니까 품어줘라’는 시혜적 차원으로 들리는데 MBC를 비롯한 언론 탄압 문제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라며 “MBC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지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언론과 비판의 자유에 대한 차기 대통령의 생각을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