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서글픈 선거 결과이다. 어차피 합법적인 경쟁이니만큼 비록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닐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기는 또 누가 아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건만 여전히 울적하고, 허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왜 이럴까. 5년 전에는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었기 때문인지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실패한 정권은 심판받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전혀 다른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독특한 성격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박정희 시대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암묵리에 핵심적인 이슈가 된 선거라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군사독재체제에서 벗어난 지 25년이 경과한 지금 과연 다수 한국인이 어떤 가치를 보다 중하게 여기는지 명확히 판별할 기회가 이번에 주어졌던 셈이다.
박근혜를 박정희와 연결시키는 것에 대하여 ‘연좌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날 박근혜라는 정치지도자가 존재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혈통 때문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본인 자신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실제로 그가 15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하지만, 큰 정치가다운 행동을 보여준 바도 없고, 국가 중대사에 관련하여 민중으로부터 찬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관여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부분 그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데 근거한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선거에서는 공약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약의 신뢰성과 진정성이다. 그것을 판단하자면, 후보자의 과거 경력과 언행을 되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가 내세우는 공약과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이 얼마나 조화되는 것이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결과는 다수 유권자들이 공약도, 공약의 신뢰성도, 고려하지 않고 표를 찍었음이 뚜렷한 정황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선거 후 나온 여러 분석·논평을 종합해보면, 여야 공히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선거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지금 한국인 대다수는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선거 막판에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먹혀들 것이라고 판단한 여당 측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세계경제는 작동불능 상태에 빠진 자본주의시스템이 언제 회복될지, 혹은 회복이 되기나 할 것인지 심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제가 박정희 시대의 경제논리로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생산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생산으로 인한 위기이다. 그리고 부의 집중, 사회적 격차, 구매력 부족이 이 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제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야 옳다.
그러나 여당 측은 말할 것이 없지만, 민주개혁 세력을 대변한다는 야당 후보 측이 선거 기간 중 이 점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니, 야당을 포함하여 현재의 소위 민주개혁 진영이 얼마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지도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 운동을 했고,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자꾸 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이다. 국민들 태반이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왜 민주주의가 아니면 안되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견고한 논리와 사상과 실천이 없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밖에 있다.
박정희 시대가 아무리 심한 억압과 인권유린의 시대였다 할지라도, 자신이나 가족·친지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면 그것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게 보통사람들의 심리와 정서이다. 더욱이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어렸을 때부터 토론다운 토론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이 거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주류언론과 대학의 타락은 극에 이르렀고, 제도권 교육에서 사실상 교육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은 군사독재 시대를 한마디로 “숨을 쉴 수가 없었던” 시대라고 했다. 박정희 시대는 인간다운 존엄성과 상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었다. 박정희는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원리, 즉 동등한 권리와 자격을 가진 ‘우리들 중의 1명’으로서 선출되어 권력을 위임받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박정희가 선포한 ‘유신정치’의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유신은 영어로 Restoration, 즉 ‘왕정복고’로 번역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박정희 자신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실상 왕이었고, 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러기에 그는 한번도 국민 개개인의 인격과 자존심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행복한 돼지’이기를 거부하는 자는 그의 국민에서 배제되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그 박정희 시대에 꺾이지 않는 인간정신의 숭고함을 대변했던 시인 김지하가 선거 동안 보여준 행태이다. 요약하자면 “후천개벽의 시대에는 여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기묘한 논리로 그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도왔다.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떠나서 충격적이었다. 며칠 후에는 ‘조선일보’를 통해서 온당한 글이라고는 할 수 없는 궤변과 독설과 욕설로 옛 민주화의 동지이기도 했던 선배들을 공격함으로써 그의 논리가 변절도, 전향도 아닌 지적·정신적 파탄의 소산임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히 보면 특정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박정희 시대를 극복해내지 못한,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사상적 빈곤을 상징적으로 집약한 서글픈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