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대기업 발언으로 본 경제민주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첫 정책 행보 대상으로 경제계를 선택하면서다. 글로벌 경제위기 징후와 심각한 양극화 속에 ‘중산층 복원’과 ‘민생 대통령’을 차기 정부 과제 중 맨 앞줄에 놨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이날 하루 중소기업, 소상공인, 재계를 모두 만나면서 정책의 주안점도 비교적 분명히 드러냈다. 강도는 미지수지만 당초 약속대로 ‘경제민주화’를 실행에 옮긴다는 원칙 아래 중소기업 활성화, 소상공인 보호, 재벌개혁의 3대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 골목상권 보호 우선
박 당선인은 첫 일정인 중소기업중앙회 방문에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날 경제계 만남 순서에 자신의 의지를 반영했다는 의미다. 차기 정부의 관심사 순위이자, 정책지원 우선순위로 볼 수 있다. 이는 2007년 이명박 당선인이 경제계 면담 일정으로 처음 재벌 오너들과 간담회를 한 것과 대비된다.

중소기업 회장들과 환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회장단과의 만남 행사에 앞서 중소기업 회장들과 차를 마시며 환담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 성향을 그동안 띠었다면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가고,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로 가겠다”면서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중심이 되도록 그렇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수출 중심 성장전략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이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야말로 다음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책무이고 그 중심에 ‘9988’(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99%이고 전체 근로자 중 중소기업 종사자가 88%라는 의미)의 중소기업 살리기가 있다”는 지적대로 향후 경제성적표의 관건이 ‘일자리’고 그 열쇠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활성화에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박 당선인은 “가장 큰 약속 중 하나가 중산층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이 중심이 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이 부당하게 납품 단가를 인하하거나 중소기업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탈취하거나 중소기업의 영역을 무분별하게 침해하는 횡포나 불공정 거래는 철저히 근절하겠다”고 불공정 거래 관행 개혁도 거듭 다짐했다.
■재벌 사회적 책임 강조
박 당선인은 마지막 순서인 재계와의 만남에선 “고통 분담”을 거론했다. 전반적 경제·민생 위기 속에서도 대기업은 예외였고, 오히려 대기업이 불공정 경쟁, 이윤의 사내 유보, 고용 문제 등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악화된 측면이 있다는 규정으로 풀이된다. ‘박근혜식 재벌개혁’을 예고한 것이란 평가는 이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전경련 회관에서 가진 대기업 회장단과의 티타임에서 “대기업도 좀 변화해주시길 바란다”면서 “앞으로 경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국민의 뒷받침과 희생이 있었고 국가 지원도 많았기 때문에 국민기업 성격도 크다고 생각한다”며 “대기업들의 경영목표가 단지 회사 이윤 극대화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공동체 전체와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당선인은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이나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소상공인들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도 자제되었으면 한다”며 “서민 업종까지 재벌 2, 3세들이 뛰어들거나 땅이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식은 요청·당부지만, 향후 재벌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선 규제와 처벌을 하겠다는 경고다.
이처럼 박 당선인이 향후 ‘경제민주화’를 예고했지만, 문제는 강도다. 앞서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 등 ‘박근혜식 경제개혁’안으로 실제 재벌의 독주 관행을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또 경제의 다른 한 축이자 민생의 중요한 부분인 노동 문제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방향이 없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