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과장광고, 강제영업, 과한 해지금… ‘불공정 거래’ 편의점의 덫

박순봉 기자

“그만두자니 위약금 걸리고 계속하자니 생활 안되고”

창업서 폐업까지 ‘불평등 계약’의 진실… 편의점협회선 “일부의 주장” 반박

‘깔끔하고 운영이 쉽다.’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안정적이다.’ ‘대기업이 가맹본사라 믿을 만하다.’

편의점을 창업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생각이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결과 편의점은 본사와 점주 간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접 출점’ ‘정보공개서 미제공’ ‘예상매출 허위과장 광고’ ‘과다한 계약해지 위약금’ ‘24시간 강제영업’ ‘과다한 미송금 위약금’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됐다. 과거에 편의점 본사에서 영업담당으로 일했던 김모씨는 “편의점 본사는 첫번째 고객을 가맹점주, 두번째 고객을 소비자라고 생각한다”며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보다 본사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이들은 점주들”이라고 말했다. 본사가 가맹점주들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다.

편의점 본사 측은 “대부분의 점주들이 계약관계에 만족하고 있다”며 “일부 점주들이 계약관계를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여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비교적 소액의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고 운영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본사와의 불공정 계약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편의점주들도 늘어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20일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비교적 소액의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고 운영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본사와의 불공정 계약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편의점주들도 늘어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수십쪽 달하는 계약서 읽을 틈 없이 불리한 계약

조모씨(43)가 편의점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초다. 조씨는 당시 10년 넘게 일했던 제지회사의 경영이 악화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직한 상태였다. ‘월급쟁이보단 낫겠지’라며 자영업을 구상하던 조씨의 눈에 띈 것은 동네 편의점이었다. 단골손님이던 조씨가 편의점 운영에 대해 묻자 점주는 조씨에게 “양도하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다. 조씨는 그간 모은 돈과 퇴직금 7000만원을 털어 편의점을 양도받기로 했다.

2011년 4월 계약을 위해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본사 직원은 50쪽 분량의 계약서를 조씨에게 건넸다. 시끄러운 커피전문점에서 수십쪽에 달하는 계약서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계약서를 훑어보려 노력하던 조씨는 본사 직원에게 중요 사항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본사 직원은 “다른 경쟁사의 편의점을 동시에 운영하면 계약 위반”이라는 말만 강조했다. 본사 직원은 계약에 앞서 가맹점·직영점의 총수, 가맹점 사업자의 매출 현황 등이 담긴 정보공개서를 조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정보공개서는 편의점을 하려는 사람들이 현재 사업상황이 어떤지 상세히 파악한 뒤 최종 계약 여부를 결정하라는 취지로 본사에서 공개해야 하는 핵심 자료다. 관련법은 정보공개서를 제공하지 않거나, 제공한 지 14일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는 가맹비를 받거나 가맹계약을 체결 못하도록 하고 있다. 조씨는 “본사 직원이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정보공개서를 봤다는 나의 서명만 받아갔다”고 말했다.

곽철원 해냄 프랜차이즈전문법률원 가맹거래사는 “편의점 본사 대부분이 정보공개서 사전 제공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며 “본사와의 분쟁으로 조정상담을 하는 점주들 중 정보공개서를 제대로 받아 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사는 점주들이 정보공개서나 계약서의 내용을 상세히 알기를 원치 않는다”며 “한국 프랜차이즈 시장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 사업 정보공개서 제공 않고 봤다는 서명만 받아

‘사장님이 된다’는 조씨의 기대는 얼마 안가 절망으로 바뀌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조씨의 편의점의 하루 매출은 80만원 정도였다. 매출액에서 부가가치세를 제하고 회사에 35%를 떼어준 뒤 마진율을 제하고 남는 월 정산금(수입)은 340만원 정도다. 월세, 인건비를 지불하면 조씨에게는 40만~60만원이 남았다. 조씨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했지만 생활비 마련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사채까지 써야 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과의 사이가 나빠져 이혼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금 조씨에게 남은 것은 2000만원의 빚뿐이다.

그러나 폐업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적자 운영을 견디다 남은 계약기간을 알아본 조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맺은 계약이 기존 점포의 양도·양수가 아닌 5년 신규 계약임을 알았다. 이전 점주가 19개월간 운영한 점포를 이어받았음에도 본사가 신규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씨는 그제서야 계약부터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조씨는 “40년 동안 살면서 가장 고생을 했던 기간이 편의점을 운영한 지난 2년”이라며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 돈을 투자하고도 회사를 위해 종노릇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편의점점주협의회와 함께 정보공개서 미제공 등의 혐의로 본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계획이다.

■ ‘증정’ 행사, 본사엔 마진 챙기기 점주엔 강제 할인

점주들은 편의점에서 종종 하는 일종의 경품행사인 ‘2+1 행사(제품 2개를 사면 1개를 공짜로 주는 행사)’는 “강제 할인행사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1000원짜리 음료 2개를 팔고 1개를 증정해 3개를 팔면 각 제품마다 판매가가 333원 깎인다. 점주 입장에서는 1개를 무료로 주는 것이 아니라 3개 제품의 판매가가 각각 깎이는 것이다. 본사가 보전해주는 추가 1개 제품의 원가는 변함이 없지만 나머지 2개 제품의 판매가가 줄어들면서 점주에게 돌아오는 마진은 줄어든다. 한 점주는 “본사가 제조업체로부터 뒤로 마진을 챙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그러면서도 점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꼼수를 쓴다”고 말했다.

‘증정’ 행사는 소비자에게는 선물이지만 점주에게는 본사의 강매행위다. 최근 한 편의점 브랜드에서 소비자가격 3500원짜리 도시락을 팔 때 소비자가격 1500원짜리 블루베리 음료를 증정하는 행사를 했다. 도시락과 음료는 한 쌍의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점주는 블루베리 음료를 따로 주문해야 한다.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최소 단위가 정해져 있어 블루베리 음료는 도시락 개수 이상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행사가 끝나고 남은 물량은 팔아야 하지만 증정 상품 대부분은 인기가 없어 재고로 남는다. 증정행사로 팔린 제품은 본사가 원가를 보전해주지만 나머지는 점주가 알아서 팔아야 한다.

■ 제품 공급가 너무 비싸 마트나 시장서 사오기도

부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ㄴ씨는 가끔씩 도매시장에 가서 음료수를 대량으로 사온다. 대형마트 할인행사 때는 과자를 사오기도 한다. 편의점 본사에서 알게 되면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는 사유지만 ㄴ씨는 위험을 감수한다. 편의점 본사의 공급가가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점주들은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마트 소비자가보다 비싸게 본사로부터 매입한다.

ㄴ씨는 판매가 800원인 캔커피를 예로 들었다. 이 캔커피를 ㄴ씨가 본사로부터 매입하는 가격은 개당 310원. 하지만 도매시장에 가면 같은 제품을 개당 150원에 살 수 있다. 판매가 2000원인 과자의 편의점 매입원가는 1250원이다. 하지만 마트는 이 과자를 할인기간에 750원에 소비자들에게 판다. ㄴ씨는 “유통력이 강한 본사가 어째서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 점주들에게 물건을 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어떤 물건은 가격이 너무 비싸 손님들에게 팔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 ‘최저 수입 보장’ 적자 점포엔 그림의 떡

ㄷ씨(39)는 지난해 말 자전거 판매업을 하기 위해 점포를 얻었다. 하지만 CU, 세븐일레븐, GS25 등 3개 편의점 개발부 직원들이 그를 찾아와 “자리가 좋다”며 편의점을 내라고 설득했다. 3개 편의점사들이 모두 달려들자 ㄷ씨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ㄷ씨는 결국 본사의 이익배분율을 35%에서 30%로 낮춰주겠다는 제안에 한 브랜드의 편의점을 내기로 결심했다. 본사 직원은 일매출 86만원 이상은 확실하다며 매출이 나오지 않아도 월 정산금(수입) 400만원을 보장하니 걱정말라고 했다.

지난해 1월 개점한 ㄷ씨의 편의점 일매출은 20만~30만원이었다. 지난 2월 ㄷ씨가 받은 한 달 매출 정산금은 90만원이었다. 월세도 인건비도 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매달 수백만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ㄷ씨는 최저보장 400만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에게 최저보장은 없었다. 본사 측은 “일매출 45만원이 되지 않으면 최저보장 400만원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본사 직원은 ㄷ씨에게 “계약서에 다 나오는데 안 읽었느냐”고 물었다. ㄷ씨는 “내용이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최저보장이라고 해서 장사가 안되는 점포의 생존권을 지켜주는 것으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ㄷ씨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 아르바이트생을 써 인건비가 18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하지만 하루 야간 매출은 1만원이 나오기 어렵다. 아무것도 팔지 못하는 때도 많다. 이 때문에 ㄷ씨는 본사에 야간영업을 중단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본사는 완고했다. 오히려 ㄷ씨의 점포를 야간에 순찰하며 감시하고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으면 사진을 촬영해 경고했다. ㄷ씨는 “영업 2개월 만에 카드대출 500만원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 높은 해지위약금에 폐점도 마음대로 못해

분식집을 운영하며 세 남매를 홀로 키워온 공해선씨(48)는 지난해 8월 평생을 모은 5000만원으로 편의점 창업을 결심했다. 힘들게 살아온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상담을 신청하자 본사 직원은 대구 수성구에서 살던 공씨에게 30㎞ 이상 떨어진 대구 달성군 점포를 소개했다. 본래 소형마트 자리였는데, 24시간 운영이 아니었음에도 일매출이 150만원 정도 나왔던 좋은 자리라고 했다. 창업지원금 2600만원도 약속했다. 공씨는 ‘24시간 운영을 하면 하루에 230만원 이상 매출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9월 편의점을 창업했다.

하지만 20일이 채 지나지 않아 공씨의 점포 자리에서 소형마트를 운영하던 ㄹ씨가 인근에 소형마트를 냈다. 공씨의 편의점과 25m 떨어진 거리였고, 기존 소형마트와 같은 이름이었다. 편의점이 아니었음에도 ‘24시간 운영’을 간판에 걸었다. 결국 공씨의 일매출은 이 가게가 생긴 후 50만원을 넘지 못하게 됐다. 공씨는 주말까지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했다. 하지만 월세·인건비 등을 제하면 본사로부터 최저보장 지원을 받아도 공씨의 수중에는 40만원이 남지 않았다.

결국 공씨는 폐점을 결정하고 본사에 문의했다. 본사는 공씨에게 계약해지 위약금으로 7900만원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보증금·시설비·본사 기대이익 보상금 등이 포함된다. 매달 공씨가 40만원 정도를 손에 쥘 때 본사는 순이익 180만원 정도를 가져갔다. 본사는 월세·인건비 등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본사는 기대이익 보상금으로 월 180만원의 1년치인 2160만원을 공씨에게 청구했다. 공씨는 “그만두자니 해지 위약금이 너무 많고, 계속 영업을 하자니 생활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들만 아니면 농약을 먹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 편의점협회 “가맹점과 이익과 손해 공유하는 관계”

이 같은 편의점 본사와 가맹점 간의 불공정한 관계에 대해 한국편의점협회 측은 본사와 가맹점은 이익과 손해를 함께 보는 구조라 일부 점주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협회 관계자는 “편의점은 가맹본부와 점주가 함께 투자해 매출을 극대화하는 ‘파트너 관계’”라며 “본사가 인테리어 비용 및 판매용 집기 설비류 등을 무상지원 혹은 대여해주고 있으며 물류비도 포함시키지 않고, 제품을 원가 그대로 가맹점에 공급한 뒤 그 이익을 나눠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편의점 24시간 운영은 고객들의 요구로 발생한 것이고, 점주들도 이를 알고 시작한 것이다”라며 “미국과 일본의 편의점도 모두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일부 점주들의 왜곡된 주장으로 다른 점주들까지 영업에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점주들의 주장은 이미 과거에 제기됐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모두 소명했던 내용이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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