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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정도만 수업듣고 나머지는 다 자요”

입력 2013.04.02 22:26

수정 2013.04.0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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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의 현실

“딱 우리 학교예요!”

서울 강북지역의 한 일반고에 다니고 있는 ㄱ군(17)에게 “수업 포기자들이 많으냐”고 묻자 돌아온 말이다. ㄱ군은 “우리 학급 38명 중에 나름 공부하는 학생은 3명”이라고 했다. 그나마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20여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 배운 내용이라고 수업을 안 듣고,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다고 했다. ㄱ군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는 체육시간을 빼고는 어느 수업시간에도 다 잔다”고 말했다.

자는 학생들이 많아 교사들도 포기하는 분위기다. 한 명, 한 명 일일이 깨우다가는 수업시간이 다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ㄱ군은 시험 1주일 전 교사가 예상문제 방향을 알려줄 때도 안 듣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반고에서 시험은 그냥 찍는 용”이 된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등교하거나 아침 일찍 조회만 받고 도망가는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띈다. 우스개로 “출석부로 오목 둔다”는 얘기를 나눌 정도로 출석부에는 빈칸이 많다.

▲ 한반 38명 중 3명만 공부… 고교별 ‘급’ 더 확연해져
“졸업장 따러 온다” 자조… 교사 “뭘해도 안돼” 포기

ㄱ군의 학교는 한때 지역에선 ‘명문고’라고 불렸던 곳이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붐이 일면서 명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교 바로 옆에 자사고 1곳이 생겼고, 요리나 애니메이션 등에 꿈이 있던 아이들이 특성화고로 빠지면서 이 학교에는 ‘공부도 못하고 꿈도 없는 아이들’만 모이게 됐다는 것이다. ㄱ군은 “차라리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입시 때문에 공부를 하는 분위기였지만 자사고, 특목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일반고 아이들은 수업을 듣겠다는 의지도 없고, 성적 향상에 대한 관심도 없다”며 “옆의 친구가 열심히 공부를 해야 심각성을 깨닫고 나도 따라서 열심히 할 텐데 어떤 때는 아무도 공부를 안 하니까 나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서울 서부권의 일반고인 ㄴ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고등학교 배정을 잘못 받았다”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한다. 결석하는 학생이 한 반에 3~4명씩 되고, 학급의 3분의 1 정도는 학업 성적이 크게 뒤처지는 아이들로 채워져 있다. 학교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자퇴하거나, 다시 복학하는 학생들이 많아 1년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입학할 때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은 얼마 다니지 않고 인근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현상도 있었지만 다행히 올해는 주춤한 상태라고 했다.

인근 자율형공립고나 자율형사립고에서 전학오는 학생들도 있다. 입시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일반고로 돌아오거나 자공고, 자사고에서 문제를 일으켜 소위 ‘일반고로 쫓겨나는’ 학생들이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자공고, 자사고가 밀어낸 아이들을 일반고가 떠맡는 셈”이라며 “자공고, 자사고는 공부를 과도하게 시키는 학교이고 일반고가 정상적인 교육을 시키는 건데 사람들의 시선은 거꾸로 돼 있다”고 했다. 이어 “사립고들은 1등부터 100등까지 특별관리를 해주거나 공공연하게 서울대반을 만들어 비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데 모순적이게도 학부모들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만 좋아한다”며 “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입시에서 출발부터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자공고·자사고와 일반고는 애초에 게임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집에 와서 ‘복학생이 수업 끝날 때쯤 학교에 와서 밥만 먹고 간다’고 할 정도로 학교 분위기가 열악하다”며 “일반고 중에서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분위기인 사립고를 가려고 하지 공립고는 절대 안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낙후된 지역의 교사들이 강남으로 발령받으면 굉장히 열심히 가르친다고 하더라”며 “일부 교사들이 이 지역의 아이들은 뭘 해도 안된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일반고의 위기가 강북이나 취약지역만의 얘기는 아니다. 강남지역의 일반고인 ㄷ학교도 주변에 휘문고, 현대고, 중동고 등의 학교들이 자사고로 지정되면서 급격히 침체기를 겪고 있다. 입시를 앞둔 이 학교 3학년 교실은 조용하지만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 반에서 대학에 갈 만한 성적이 되는 아이는 5명 정도만 꼽힌다.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나가고 수업을 듣는다. 많게는 학생들의 3분의 2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만 교사들은 대부분 문제풀이로 진행되는 수업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 그 아이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다. 아이들은 시험시간에도 5명 정도는 잠을 잔다고 했다.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 대다수 학생들은 소득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2학기가 되면 더 심해진다. 일찍 등교했다가 조퇴해버리거나 점심시간에 맞춰 등교한 뒤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생긴다. “학교 오면 지옥 같다”는 아이부터 “졸업장 따러 학교 간다”는 아이까지 좌절과 한숨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기본적인 셈을 못하는 아이들이나 초등학생처럼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있다”며 “기초 소양이 안돼 수업을 아예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져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문제풀이식 수업이 학교와 교사가 평가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아이들 특성에 따른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며 “고교 평준화 때는 성적 상하위권이 적고 중간층이 많은 정상분포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아이들이 배움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사고보다 못한 학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인 ㄹ군(18)은 “자사고에 간 애들은 잘하는 집단이고 우리는 거기 들어가지 못한 열외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가 자사고 지정을 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자사고를 지원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별로 ‘급’이 더 확연히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실용음악으로 진로를 준비 중인 ㄹ군은 “음악을 하고 싶지만 인문계 수업을 들어야 하다보니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며 “수업은 내 진로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교사들은 아이들의 ‘어휘력’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교사는 “지도했던 학생들이 이해관계, 배타적, 이타적, 익명성, 관용, 훼손, 엄벌과 같은 단어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면서 “단어의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나 과학, 수학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업이 중단된 경험을 한 학생들이 대부분 일반고로 진학하게 되고 학업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생활지도는 아이들의 성적과 맞물려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강남지역의 한 일반고에서는 한 학년 500명 중 1학년 305명, 2학년 140명, 3학년 140명이 흡연·지각·교문지도 등으로 징계(누적인원)를 받았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자고 있는 애들을 깨우면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라며 “이미 교사들 개개인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꼬여 있고 악화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물었다. 한 일반고 학부모는 “교사를 탓할 수도, 학생이나 부모를 탓할 수도 없다”며 “깊은 고민 없이 고교서열화를 만들어낸 위정자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ㄱ군은 “일반고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ㄱ군의 친구들은 미래에 ‘무엇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어떤 대학에 갈 거다’라고 말하지만 성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해 낙심하고, 그 때문에 공부를 멀리하고 있었다. “일반고는 이제 3류학교가 된 거죠. 나머지 학생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에요.” 겸연쩍게 웃던 ㄱ군은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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