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걷기 예찬론자와 느림보 학자가 함께 여행하며 발견한 ‘잘 사는 법’

서영찬 기자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쓰다 신이치 지음 | 문학동네|345쪽 | 1만5000원

한국의 유명 여행작가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는 첫 만남에서 서로 통했다. 금세 친구가 됐고 얼마후 부탄 여행길에 동행했다. 이들은 강원도, 안동, 지리산, 제주도와 홋카이도, 나라 등지를 함께 여행하며 ‘속도’로 정의되는 현대적인 삶을 비판한다. 책은 두 사람의 여행기인데 동일한 체험에 대한 두 가지 내러티브로 짜인 구조가 특징이다.

일본 저자 신이치는 느리게 사는 게 미덕이라는 ‘슬로라이프’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김남희 역시 걷기 예찬론자이며 빈둥거리고, 한눈팔고, 느리게 사는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책은 이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느리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과 삶]걷기 예찬론자와 느림보 학자가 함께 여행하며 발견한 ‘잘 사는 법’

GNP를 비꼬아 GNH라는 국민행복지수를 창안한 부탄의 오지 마을 사람은 느리고 느리게 산다. 모자라고 불편하지만 나눌 줄 알고 그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 마을은 70년대 마을로 향하는 도로를 놓는데 수차례 외국인 인부들에게 ‘뇌물’을 갖다바쳐 직선이 아닌 구절양장 곡선 길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직선 도로가 자연과 마을을 해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안함 대신 느리고 불편한 쪽을 택한 것이다. 영국이 조사한 행복도에서 한국이 세계 103위였을 때 부탄은 8위였다.

일본 나라현의 가와구치 요시카즈 할아버지는 20년간 남들처럼 농약에 의존해 농사 짓다 뭔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농법을 시작했다. 논과 밭을 자연 그대로 놔둔다. 유기농법과 달리 잡초도 뽑지 않는다. 벼논에서는 온갖 생물이 함께 산다. 자연농법으로 키운 작물은 손이 많이 가고 상업성이 떨어지지만 인간의 몸은 물론 생태계에 최적이라고 한다. 요시카즈 할아버지는 자연농법은 농업 기술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젊은 부부도 세상의 틀을 벗어난 경우다. 이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 잘 다니던 일터를 버리고 20대에 무주 산골을 거쳐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책 쓰기, 만화 그리기, 마을도서관·민박집 운영 등으로 돈과 거리가 멀게 산다. 남들 눈에는 미래가 불안한 삶이지만 이들 부부는 행복에 젖어 있다.

불편하지만 느리게 살기를 스스로 택한 사람들. 두 여행자는 이들을 통해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자본주의의 속도에 몸을 맡기고 사는 현대인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느리고 불편한 삶이 현대인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삶이라고 말한다. ‘느리게 사는 삶’이 얼핏 ‘힐링’이라는 개념과 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저자들은 힐링을 일시적 유행병으로 본다. 이들이 말하는 ‘느린 삶’은 힐링이 아니라 ‘대안적 삶’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들이 속도병에 찌들어 사는 현대인의 병을 치유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안적 삶을 모색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 홋카이도에 ‘베델의 집’이라는 정신질환자들 공동체가 있다. 환청에 시달리는 사람도,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도 저마다 일을 하며 한 가족처럼 어울려 산다. 다른 수용시설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외부인이 찾아오면 “당신, 병이 있어도 괜찮아요. 신이 주신 선물이니까”라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불러준다고 한다. 김남희는 베델의 집에서 사람 사는 따뜻함을 느꼈다고 했다. 비정상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정상인보다 더 행복에 겨워 살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죽이 척척 맞는 두 저자가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차이’를 좁히지 못해 벌어졌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 사과 문제를 이야기하다 감정이 부딪친 것이다. 김남희는 “과거사에 일본 민간인들도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신이치는 “그 문제는 각자에게 맡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신이치가 한국인 아버지를 둔 자이니치임에도 그런 주장을 편다는 점이 김남희로서는 못내 속상했던 듯하다. 그러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차이를 인정하려 노력하는 것도 행복을 향한 대안 모색 과정이라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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