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5000년 중국을 움직인 ‘세 치 혀’… 100여명 사상가의 논변들

서영찬 기자

▲ 쟁경…자오촨둥 지음·노만수 옮김 | 민음사 | 988쪽 | 3만8000원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화술로 천하를 주름잡은 달변가들이 즐비했다. 흔히 유세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혀는 검과 같았고 입술은 창과 같았다. 이들은 세 치 혀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춘추전국시대 화술은 상대와 이론을 다투어 싸우는 쟁경(爭經)의 무기였고 논변은 정치 투쟁의 도구였다.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소진과 장의를 길러낸 초나라의 귀곡자는 변론술의 대가였다. 그가 문하생들에게 낸 졸업 시험은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땅 구덩이를 판 뒤 그 속으로 들어가 “누구든 변론으로 나를 울려야만 졸업을 시켜줄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책과 삶]5000년 중국을 움직인 ‘세 치 혀’… 100여명 사상가의 논변들

논변은 상대의 심리를 읽고 논리적 허점을 단칼에 무너뜨려 굴복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런 설득의 기술을 갖추려면 웬만한 지식으로는 힘들다. 이들의 논변은 적확한 언어를 구사하고 사물의 이치를 꿰뚫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고대 중국의 변론술은 요즘으로 따지자면 논리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논리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장면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염철 회의’이다. 한나라 무제 때 소금과 철의 국영화를 놓고 중앙 관료들과 지방 인재들이 일대 논쟁을 벌였다. 염철 국영화로 세수를 증대해 국경 수비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백성의 세금 부담을 경감해 덕의 정치를 확산시켜 국경 밖 흉노족을 감화시켜야 한다는 민영화론이 팽팽히 맞섰다. 예리한 논지와 공박이 오갔다. 결국 국영화론을 펼친 관료들이 논파됐지만 염철 회의는 국방비를 줄여 복지비 확충에 노력해야 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복지 논쟁과 닮은 점이 많다.

중국의 변사들은 어찌보면 합리적 이성주의자였다. 동한시대 왕충의 경우를 보자. 당시 사람들은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이 벼슬아치의 부패 때문에 생겨난다고 여겼고, 길일을 택해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왕충은 이를 논리적으로 따지며 허무맹랑한 믿음임을 드러냈다. 미신을 배격하고 이성을 중시하는 태도와 어느 정도 과학적 지식을 겸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름을 떨친 변사 가운데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더러 있었다. 전국시대 공손룡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궤변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공손룡의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백마비마 논법은 말장난과 논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저자는 공손룡을 변사가 아니라 ‘변자’라 부른다. 변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의미일 것이다.

왕충은 논변에는 심변(心辯)과 구변(口辯)이 있다고 했다. 심변은 근거가 확실하고 사리에 맞아 상대방이 기쁘게 따르도록 하는 경우이고 구변은 말재간으로만 이기는 것일 뿐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라고 한다. 결국 진정한 설득의 기술은 심복(心服), 즉 마음을 굴복시키는 기술임을 고대 중국 학자들은 꿰뚫고 있었다. 책은 명재상 관중, 공자, 맹자에서부터 명나라 이탁오와 청 옹정제에 이르기까지 100명이 넘는 사상가들의 빼어난 논변 사례를 가려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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