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안리서 운영… 근접출점 경쟁 치열
부산 수영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윤호준씨(43·가명)가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월 경남 거제시의 임영민씨(32·가명), 지난달 18일 경기 용인시 김모씨(43) 등에 이어 올 들어서만 편의점주 3명이 자살했다.
지난달 13일 오후 7시쯤. 윤씨는 동생에게 “생활이 너무 힘들다.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 광안리 해변 근처 편의점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24시간 편의점은 한창 영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윤씨는 가게 문을 닫고 자신의 차를 운전해 광안대교 하판 해운대 방향 도로 중간에 세웠다. 그런 다음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을 뒤로한 채 검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바다를 수색한 지 30분 만에 광안대교 밑에서 윤씨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은 뒤였다.
▲ 돈 적게 드는 위탁가맹점 개점… 수익 60% 이상이 본사 몫으로
이혼 뒤 아이 양육비 등 부담… 본사 “장려금 지급해왔다”
윤씨는 2007년 이혼했다. 당시 초등학교 입학 전이던 아들과 딸은 부인이 맡았다. 윤씨는 양육비를 부담했고 가끔씩 아이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회사를 다녔던 윤씨는 2010년 9월 친척에게 돈을 빌려 부산 광안리의 편의점을 넘겨받았다. 적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위탁가맹점 방식이었다. 위탁가맹점은 점포 임대료를 본사가 부담하는 대신 본사가 가져가는 수수료율이 높다. 일반가맹점은 본사가 수익의 35% 정도를 챙기지만 위탁가맹점은 60~65%를 가져간다.
윤씨 상황은 지난해 아이들 엄마가 녹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악화됐다. 생활비도 지원해야 했던 윤씨는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빚이 쌓여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의 채무가 수천만원대”라고 말했다.
윤씨 주변 사람들은 윤씨가 편의점을 운영하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편의점 인근 상가에서 미용실을 하는 ㄱ씨는 “윤씨가 머리 깎으러 올 때마다 ‘장사가 안돼 힘들다. 내 돈 집어 넣으며 장사하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씨가 출퇴근 거리도 멀고 아르바이트생도 잘 구해지지 않아 1주일에 하루만 집에 가고 나머지는 편의점에서 자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근처 아파트 경비원인 ㄴ씨는 “담배를 사러 갈 때마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며 “이 지역은 관광지도 아니고 사각지대라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 16일 방문한 윤씨 편의점은 직영점으로 전환돼 본사가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300m 정도 가면 광안리 해변이지만 관광객이 찾기에는 후미진 곳이다. 게다가 해변과 윤씨 편의점 사이에 다른 편의점이 3개나 있다. 윤씨의 편의점에서 광안리 방향으로 100m 거리에 다른 편의점이 있고, 여기서 50m 정도 간격으로 윤씨와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 2개가 더 있다.
윤씨 편의점 상가 건물에서 9년간 부동산을 운영해온 ㄷ씨는 “이전에 편의점을 하던 사람도 장사가 안돼 나갔다”며 “이 근처는 편의점이 너무 많아 장사가 잘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계약 만기가 됐을 때 윤씨가 ‘(편의점) 더 안 하겠다’고 하더니 왜 또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지난해 재계약을 했고, 본사는 장려금으로 2년간 월 4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조사까지 마쳤는데 현재까지 편의점 운영과 관련된 것 외에 다른 자살 동기는 찾지 못했다”며 “생활고로 인한 자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해당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비를 제외하고도 월 250만원의 순수입이 나는 곳이어서 장사가 그렇게 안되는 곳이 아니었다”며 “윤씨가 사망한 날 오전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와 담당 직원이 찾아가 위로하고 채무를 해결할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씨의 가정형편이 어려워 장려금을 지급해왔다”며 “폐점 비용 등 일체를 본사가 부담했고, 윤씨 자녀들에게 특별 부의금을 보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