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전장서 바지에 똥·오줌 안 싸는 군인은 ‘공격적 사이코패스’

서영찬 기자

▲전투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로런 크리스텐슨 지음·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622쪽 | 2만5000원

1980년대 말에 본 영화 <플래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람보> <코만도>에 익숙해 있던 사람에게 <플래툰>은 색달랐다. <플래툰>이 마음을 흔들었던 이유는 전투 장면이 대단히 사실적이었기 때문일 게다. <플래툰>은 <람보>처럼 과장법을 쓰지 않고 전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또 ‘강한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람보>류의 영화와 달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실제 전투에서 군인은 용맹하기보다 초라하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가 시작되면 군인들은 극심한 공포감과 함께 생리적으로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때 소화, 배설 기관에 부하가 걸려 부지불식간에 똥이나 오줌을 싼다. 2차 세계대전 참전 미군 절반이 전투 중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인정했다. 또 4명 중 1명은 배변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배변·배뇨 경험자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바지에 일을 본 행위’가 알려지는 것을 수치로 여기니까.

[책과 삶]전장서 바지에 똥·오줌 안 싸는 군인은 ‘공격적 사이코패스’

경찰관들은 흔히 총격전이 한창일 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안 들린다고 말한다. 또한 총격전 와중에 범인을 제대로 쳐다보는 경찰은 얼마 안된다고 한다. 총격전을 겪은 경찰관들을 조사했더니 10명 중 8명꼴로 총성이 줄어드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는 사람도 소수지만 존재했다. 더불어 절반 이상이 일시적 기억상실, 터널 시야(특정 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상), 오토파일럿(무의식적 행동) 같은 지각 왜곡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겁쟁이라서 그럴까. 총격전처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처하면 바지에 오줌을 싸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극단적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생리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투를 통해 생사가 걸린 일에 직면했을 때 우리 뇌와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 놓인 군인을 ‘정신적 사상자’라 부른다. 이들은 무기력과 정신장애를 겪는다. 2개월간 교전이 끊이지 않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 장병 98%가 정신적 사상자가 됐다고 한다.

격전을 치를 때마다 정신적 사상자가 속출했는데 2차 대전 종료 후 미군의 정신적 사상자는 50만명으로 집계됐다. 그래서 전투를 계속하려면 정신적 사상자를 대체할 예비부대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수명과도 직결된다. 6개월간 지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 참전 소련군의 평균 수명이 약 40세라는 보고서가 있다.

물론 스트레스와 동떨어진 군인도 극소수지만 존재한다. 저자는 이들을 ‘공격적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며 살인 기계에 비유한다. 2차 대전 참전 소총병의 85%가 방아쇠 한번 당겨보지 못했다는 통계에 비춰보면 확실히 이들은 예외적 존재다. 2차 대전 때 이탈리아를 주무대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코만도’라 불린 찰스 켈리와 혼자서 적군 전투기 352대를 격추한 독일군 조종사 에리히 하르트만 같은 인물이 대표적 사이코패스이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람보도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교전이 끝나고 살아남은 군인의 첫 반응은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이라 한다. 전사한 동료에 대한 슬픔과 자책감이 밀려들 것이라는 추측은 오류다. 전투 중 소변을 지리고 방아쇠조차 당기지 못한 채 공포에 떠는 군인.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투에서 군인은 나약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참전 군인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의 수치스러운 경험담에 공감하며 “네가 아니라 다행이야”라면서 꼭 안아주라는 것이다.

전투 모의 훈련 때 낙오한 장병을 향해 다가간 교관이 내뱉는 말의 십중팔구는 “넌 이젠 죽은 거야”이다. 저자는 훈련 중 ‘죽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전의를 꺾는다는 것이 이유다. 책은 군인과 경찰을 위한 교본 성격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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