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인간에게 하냥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역사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손에 쥐려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선한 ‘교훈’으로도, 불한당의 ‘광기’로도 다가왔다. 때로 그러한 집단적 광기들은 병든 사회의 신호이기도 했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명저 <슬픈 열대>에서 “역사가 인간에게 가까이 올 때 사회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징후들”을 탄식한 바 있다.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패전한 조국을 탈출해 미국으로 가면서 겪은 인간적 모멸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마감 후]역사의 병적 징후들](https://img.khan.co.kr/news/2013/05/23/l_2013052401003520900275862.jpg)
350명이 짐짝처럼 구겨넣어진 채 2주간 항해 끝에 처음 도착한 프랑스령 섬. 그곳 사람들은 그들을 ‘매국노’라며 경멸했다.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예수 그리스도로서 2000년 동안 그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은 벌을 주려고 이 땅에 강림한 것’이라고도 했다. 전쟁의 소동에선 격리된 채 바람에 실려온 공포만 접한 섬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착란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병적 징후들이 보인다. 소위 ‘일베 현상’이라고 한다.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라는 이름부터 선동적이다. 그들은 증오와 분노를 양분 삼아 역사를, 인간성을 비트는 것에서 존재 근거를 찾는다. 그들의 5·18 민주화항쟁 비하는 인간적으로 참혹하다. 5·18 희생자들 관이 늘어선 체육관 사진에 ‘배달된 홍어들 포장 완료된 거 보소’라고, 진압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죽음의 문턱에 선 시민 사진을 보며 ‘회를 뜨기 직전 모습’이라고 한다. 반면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 대해선 ‘진정한 민주주의 열사’라며 영웅시한다. 레비-스트로스를 모욕하던 섬 사람들처럼 일베들의 전복된 가치를 보노라면 집단적 ‘정신착란’의 혐오를 느낀다.
실상 모든 선동에는 과장과 왜곡이 ‘진실’을 가장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격동과 흥분을 계산한 거짓이다. 나치 정권의 나팔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다 보면 결국 믿게 된다.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와 증오의 집단적 정신착란은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허물고 거짓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실제 일베들에 의해 ‘민주화’는 집단괴롭힘이나 왕따, 비추천 등 부정적 의미로 왜곡되고 있다. 그 왜곡은 걸그룹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왕따’ 발언이 촉발한 논란에서 보듯 이미 일정 부분 우리 사회에 암종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배경엔 그간 일부 언론 등 우리 사회 보수들이 근현대사 교육을 ‘좌파 교육’이라고 공격하면서 왜곡을 용이하게 만든 탓도 있다.
하지만 ‘악마’는 어둠과 함께 온다. 근인은 증오에 찬 선동이 먹힐 수 있는 토양, 즉 삶의 ‘비루함’과 무지일 것이다. 바이마르인들의 이성은 1차 세계대전 전쟁 배상금 문제와 높은 실업률,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마비됐다. 10여년 전 ‘톨레랑스(관용)’의 프랑스를 ‘인종주의’로 긴장케 한 장 마리 르펜의 극우당 부상 역시 고실업 고통과 극에 달한 좌우 동거정부의 갈등이 동력이었다. 연일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의 뻔뻔함은 20여년 일본을 멈춘 ‘장기 불황’에서 나온다. 타인의 절망은 윤리적 금제를 벗어버린 그 짐승들의 먹잇감이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지난 15일 트위터 글에서 “전효성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보수정권 6년 만에 극우적 사유가 암암리에 젊은 세대의 정신세계에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슬픈 징조”라며 “개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이성의 실패를 한탄해야 할 일이다. 일본은 아베, 한국은 일베”라고 했다.
역사가 한 시대의 광기와 거짓 욕망을 포장하는 장식품으로 전락할 때 그 사회는 병든 것이다. 역사의 암세포들은 점차 퍼져 결국 우리를 죽게 만들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1기인가, 2기인가, 3기인가. 병의 깊이를 떠나 이들 병적 징후가 우리 사회 건강성에 켜진 경고등으로 기능할 때 그나마 역사의 병리현상들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