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역사학… 과연 역사적 진실은 찾을 수 없는가

서영찬 기자

▲ 역사가 사라져갈 때…린 헌트 외 지음·김병화 옮김 | 산책자 | 446쪽 | 1만6000원

‘세계사’라는 단어를 고안한 독일 철학자 헤겔 이후 역사에는 보편적 질서와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뿌리내렸다. 과학에 대한 신봉은 이런 역사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다 근대 국가 형성기에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한 민족주의적 서사가 주류를 이뤘고 냉전시대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역사가 재단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구 역사는 영웅, 천재, 정치가들이 주인공으로 기술됐다. 하지만 냉전이 와해되자 서구 역사의 주인공은 여성, 소수 집단, 노동자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푸코, 데리다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집단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역사를 비판하며 도발적으로 ‘역사적 진실이 있기나 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책과 삶]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역사학… 과연 역사적 진실은 찾을 수 없는가

저자들은 이제 역사란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돼버렸다고 진단하며 그 배경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을 꼽는다. 민주화는 역사 기술이 다양화된 데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확산시키기도 했다고 꼬집는다. 1990년대 초반에 출간된 이 책은 상대주의에 대한 위기 의식을 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역사학 교수인 3명의 공저자는 ‘과연 역사적 진실은 찾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위기에 맞선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 푸코와 데리다의 사상적 스승은 니체와 하이데거이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반유대주의, 나치즘의 사상적 원류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저자들은 이 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역사학의 위험성을 발견한다. 상대주의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가 진행되면서 구 소련 국민들은 자신들이 배운 러시아 역사와 서구가 기록한 러시아 역사의 간극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양쪽 진영의 기술은 천양지차였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역사학자들이 개혁 속도를 따라잡을 때까지 공식적인 역사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지 말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곤 역사 시험을 없애버렸다. 학생들이 거짓을 달달 외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잠정적 정확성’이 어느 정도 갖춰질 때까지 흠결 많은 절대적 지식을 포기한 경우이다. 책은 객관적 진실과 상대주의적 지식의 긴장 관계 속에서 잠정적 정확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역사 기술 혹은 역사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역사에 대해 대중이 혼란스러워한다면 그 책임은 역사가들에게 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최근 ‘일간베스트저장소’와 일부 종합편성채널이 보여준 역사에 대한 환멸을 넘어서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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