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은밀한 사생활의 공간, 혼자만의 ‘방’은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서영찬 기자

▲ 방의 역사…미셸 페로 지음·이영림, 이은주 옮김 | 글항아리 | 751쪽 | 4만원

<사생활의 역사> 총서 간행을 주도한 미셸 페로는 어두운 곳에 갇혀 있던 사사로운 것들에 천착했다. ‘방’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페로는 방을 일상을 구성하는 원형질 혹은 세포로 표현한다. 그래서 방을 들여다보면 당대 사람들의 삶은 물론 심리 상태와 사고 경향을 알 수 있다. 가령 계몽시대 이후 유행한 둥그런 방은 평등주의를 표상했다. 상하 관계, 계급 차별을 무화하려는 의도가 원형 구도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앙시앵 레짐을 뒤엎은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원형보다 반원형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들은 혁명의회를 반원형으로 짓게 했다. 평등주의를 추구했지만 막상 권력과 정치가 실현되는 공간에서는 상하 관계를 배제하지 못한 것이다. 이 반원형 의회는 이후 대다수 국가 의회 형태의 모태가 됐다.

[책과 삶]은밀한 사생활의 공간, 혼자만의 ‘방’은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방의 대립 개념은 광장이다. 광장이 열린 공간, 공공을 위한 영역이라면 방은 닫힌 공간이자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시대를 불문한, 당연한 사실 같지만 방은 근대에 접어들어서야 사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중세시대 침대는 다인용이었다. 5~6명이 함께 잤다. 또한 왕은 침실에서 신하를 알현하고 업무를 보았다. 심지어 ‘침전 법정’이라고 왕이 침대에 누워 재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근대 이전까지 방은 혼자만의 공간이라기보다 공동 거처였다. 서민 주택에 침대가 갖춰지고 명실상부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주어진 것은 근대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울기 위해 침대로 뛰어들었다. 특히 눈물을 억제한 근대에 그러했다”고 말한다. 방에서 목격되는 근대성은 감시 회피, 독서, 성적 쾌락 추구, 고독 등과 같은 은밀함 혹은 사생활에 대한 욕구이다.

작가 카프카는 은밀함에 집착한 인물이다. 그는 “나약한 내 존재에 그들이 끼어드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하며 가족과 생활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호텔 방을 무척 좋아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고독을 즐기며 읽고 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변신>이 탄생하는 공간도 다름아닌 방이다.

저자는 특히 19세기 소설 작품에 묘사된 방에 주목했다. 방을 묘사한 텍스트가 곧 사료이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방을 무대로 당대 풍경을 절묘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된다.

책은 왕에서부터 노동자까지 방의 계층별 특징을 탐구하기도 하고 병자의 방, 감금하는 방 등처럼 속성별로 방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럽 밖의 방은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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