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지음 | 바람의 아이들)
이경혜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중학생들이 아주 즐겨 있는 책 가운데 하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미리 써놓은 말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경험해볼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니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일기장 제목이다. 일기장 주인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죽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기를 쓴 이는 세상에 없고, 일기를 읽는 이는 세상에 있다. 세상 속에 남아 있는 이가 세상을 떠나버린 일기장 주인을 떠올리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이야기 속의 재준과 유미는 남녀 공학인 중학교를 다니는 친구 사이다. 재준이 남긴 일기를 펴본 유미가 빈 칸을 채우듯이 재준의 심리와 상황을 꿰맞추어가는 구조다. ‘그때 재준이는 이랬구나, 나는 저랬는데….’ 어찌 보면 재준의 죽음은 단순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일기장 제목을 암시적으로 달았지만, 실은 살아남은 이들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기실 죽은 이는 제목을 의식하며 살지 않았다. 다만 ‘시체 놀이’라는 죽음 체험 놀이를 통해 해본 재준이가 죽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중학생다운 발상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죽음은 늘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것….
재준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따로 있고, 유미가 좋아하는 남자아이 따로 있다. 이를테면 둘 다 ‘짝사랑’이라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둘은 요즘 아이들 말로 ‘까칠한’ 친구 관계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공부도 함께한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재준은 살아 있을 때 유미에게 매우 친절하고 웅숭깊게 대했다. 그러나 유미는 재준을 늘 못마땅해했다. 그러한 관계이기에 역설적으로 서로 고민을 나누게 되고 더 잘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
재준이 죽자 재준 엄마는 그 일기장을 펼쳐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유미에게 건네주며 읽어 봐주라는 부탁을 한다. 사실 그 일기장은 유미가 재준에게 선물로 준 것이기도 하다. 유미도 재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차일피일 미루지만 결국 일기를 펼쳐 읽으며 지난 세월을 반추한다. 유미가 반추하는 세월은 재준이 살아 있을 때, 이 세상 속에 속해 있을 때 둘이 찧고 까불며 고민하던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죽은 이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산 자의 기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준의 삶보다는 유미의 삶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재준으로 불리는 어떤 아이의 죽음을 보고 이야기를 시작했겠지만, 독자는 유미의 이야기로 읽는다.
재준의 이야기든 유미의 이야기든 결국은 산 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는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임종 시 ‘삶이 끝난 게 아니라 죽음이 끝났다’고 적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게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는 그 순간 삶이 끝난 게 아니라 죽음이 끝나는 것이므로. 중학생들은 자신들의 지금 생활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다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 하고 싶은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