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입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은 많지만, ‘입술’ 때문에 죽는 일은 흔치 않다. 중국 한 무제 시절 대사농이던 안이는 군왕 앞에서 입술 한 번 씰룩인 죄로 끌려나가 처형당했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 무제의 화폐개혁 방침을 내심 반대했다는 이유였다. 대사농은 ‘3공9경’ 중 한 명으로 요즘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장관 정도 되겠다.
후고구려 궁예의 ‘관심법’처럼 황당한 이야기지만, 당시 안이의 처형이 ‘복비’(腹誹)라는 엄연한 법률에 의해 이뤄진 것임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말·글이 아닌 속으로 비난했을 때 처벌하는 규정’으로, 한 무제의 ‘공포 통치술’을 상징한다.
![[마감 후]‘복비’(腹誹)와 ‘조의제문’(弔義帝文)](https://img.khan.co.kr/news/2013/06/27/l_2013062801003987200311842.jpg)
이처럼 유사 이래 통치자들은 늘 백성들의 ‘내면’까지 통제·지배하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이는 역대 제왕의 ‘불사’(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강렬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중국 명나라 시절 동창처럼 ‘정보기관 정치’는 위세를 떨친다.
인간 존엄이 근본적 가치가 된 현대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에선 국가안보국(NSA)의 대규모 인터넷 도·감청을 통한 사생활 감시·통제 실상이 폭로됐다. 한국에선 국가정보원이 소위 ‘댓글 작전’으로 지난해 대선과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야당 성향 인사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 글을 조직적으로 생산·유포해 여론조작에 나선 때문이다. 그들은 ‘종북 대응’이란 막무가내식 ‘이념 벽’을 정당화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우리 ‘정보기관 정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라는 미증유의 ‘사달’을 일으켰다. 이것이 자신들 비행의 꼬리를 덮기 위한 무리수가 아니냐는 심증은 확연하지만, ‘아니다’라고 하니 아직 단정짓지는 말자.
역사상 ‘기록물’로 인한 큰 비극 중 하나는 조선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일 것이다. 무오사화는 표면적으로 사관 김일손이 사초에 실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가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은 참살되고, 이미 고인이던 스승은 ‘부관참시’(剖棺斬屍·관을 깨고 시체를 꺼내 목을 벰)를 당했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신진 ‘사림’과 경쟁하던 훈구 세력의 ‘기획’ 음모다. ‘성종실록’ 편찬 책임을 맡은 훈구파 이극돈은 전라관찰사 시절 정희왕후 국상 중 기생을 끼고 술판을 벌인 일 등이 사초에 기록된 것을 알고 김일손을 찾아가 파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거부당하자 연산군에게 ‘조의제문’을 일러바치며 ‘불충한 역도들을 처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초가 된 사초는 절대 비밀에 부쳐져 군왕이라도 열람이 금지됐다. 정치 보복이나 파쟁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극돈은 사초를 공개하는 것으로 개인적 비위도 감추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파당의 이익도 도모한 셈이다. 이 시대 이극돈과 훈구들이 누구인지는 굳이 적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쯤이면 ‘데자뷰’라 할 만큼 닮아도 너무 닮지 않았는가. 권력 비행으로 촉발된 문제가 고인이 된 전임 대통령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정체성’ 논란으로 비화하고, 회의록 공개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평화에 대한 신념 문제를 발언 맥락과 의도는 잘라먹은 채 ‘배덕’ ‘굴종’으로 부관참시하는 과정이 말이다.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달로 소중한 원칙과 자산을 잃게 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기록물을 남길 것인가. 국정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정권의 유불리를 떠나 다음 정부에 모든 기록을 남기자던 ‘선한 의지’는 사라지게 됐다.
당장 이 모든 사달의 배경인 이명박 정부는 ‘영악’스럽게도 중요 기록물을 남기지 않았다. 아예 정부·청와대 공식 문서 시스템은 버려둔 채 내밀한 일들은 개인 e메일을 통했다는 전언도 들린다. 그 계정이 주로 미 정보기관이 훤히 도·감청하던 외국 메일이라니 황당하다.
이 시대 복비와 조의제문에 또 얼마나 많은 피들을 흘려야 할 것인가.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