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주문량 검색 못하게 시스템까지 바꿔 ‘밀어내기’
판촉사원 파견 때 이익금은 본사에, 임금은 대리점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보면, 남양유업의 ‘갑질’은 다양하고도 치밀했다. 회사가 수요예측을 잘못해 발생한 재고를 대리점에 떠넘긴 것은 물론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량도 밀어내기 대상이었고 반품은 사실상 원천봉쇄됐다. 대형유통업체 파견 직원의 부담은 대리점에 떠넘기면서도 판매량 증가에 따른 이득은 회사가 챙겼다.
■일방적 주문량 할당…유통기한 임박해 밀어내기
남양유업은 모든 지점 및 관할 대리점에 판매목표를 설정하고 일방적으로 주문량을 할당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들을 공급하기도 했다.
남양유업의 발효유 제품인 ‘떠먹는 불가리스(유기농)’는 공장에서 매주 1600박스씩 생산됐다. 전국 대리점에서 하루 동안 주문하는 양은 130박스에 불과했다. ‘떠먹는 불가리스’ 같은 비인기 품목의 생산량이 수요보다 많다보니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 창고에 쌓였다. 남양유업은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해당 제품을 전국의 대리점에 떠넘겼다. 남양유업의 재고 관리비용은 2008년 2710억원에서 2012년 4188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었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대리점에 지워졌다. ‘떠먹는 불가리스’ 외에도 ‘이오’ ‘냉장주스’ 등의 재고 상품들이 유통기한이 1.7~3일 남은 상태에서 대리점으로 출고되기도 했다.
밀어내기 대상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품목과 새로 출시된 제품, 비인기 품목 등이었다. ‘3번 더 좋은 우유’와 ‘맛있는 우유 GT 유기농’ 같은 우유류와 ‘불가리스’ ‘이오’ 등의 발효유, ‘프렌치카페 컵’, ‘커피우유’ 등 유음료, ‘드빈치아인슈타인 치즈’ 같은 유제품과 ‘아기랑 콩이랑 두유’ 등 총 26개 품목이 대리점에 떠넘겨졌다.밀어내기는 2007년부터 2013년 5월까지 전국 1849개 대리점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이 밀어낸 물량이 대리점 공급량의 20~35% 수준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은 2010년 9월에는 대리점의 주문시스템을 변경해 최초 주문량 등을 검색할 수 없도록 했다. 최초 주문량 검색이 사라지면서 회사 주문 담당자가 최종 주문량을 대폭 변경하는 일이 쉬워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시장수요가 없을 경우, 생산공장에서 생산을 줄여야 하지만 남양유업은 다른 꼼수를 썼다. 대리점에 주문량을 강제로 할당하면서 이런 행위가 위법이라는 점을 알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했다. 법률자문을 받은 후, 대리점으로부터 주문 자체를 위임하는 동의서를 받거나 각서를 쓰는 등 합법을 가장한 것이다.
■반품은 불가능…대형마트 파견 직원 임금도 전가
밀어내기 물량에 대한 대리점의 반품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남양유업은 제조상 불량품 등을 제외하고는 반품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제품 반품률은 2008년 2.03%에서 2013년 0.93%로 내려갔다. 반면 대리점들은 밀어내기로 떠안은 물량을 지인에게 판매하거나 덤핑·폐기처분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의 대금결제를 신용카드로 하게 해 납부지연이나 대금반환 요청을 사실상 차단했다. 대리점주들은 청구액 미납부 시 신용불량자가 될 우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금액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남양유업은 대형유통업체에 파견하는 판촉사원의 임금도 사전 협의 없이 대리점에 전가시켰다. 지난해 대형유통업체에 파견된 남양유업 판촉사원 397명 임금의 59~67%를 해당 지역 대리점이 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양유업은 대형할인점 등에 대한 유제품의 배송을 대리점에 위탁하고, 대리점은 위탁업무의 대가로 점포매출의 8.5%를 수수료로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판촉사원의 임금까지 부담하게 되면서 위탁업무에 대한 대리점 마진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대리점은 진열판촉사원의 파견 여부 및 급여부담액 등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유통업체 위탁계약을 체결했다”며 “진열판촉사원 파견 시 추가매출 효과는 남양유업이 보고, 관련 비용은 대리점이 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