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수치심과 죄책감의 발원지는 ‘내 안의 타자’

서영찬 기자

▲ 수치심과 죄책감…임홍빈 지음 | 바다출판사 | 439쪽 | 2만8000원

무인도에 홀로 사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럴 경우 그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때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죄책감·수치심은 ‘타인의 눈’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사회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임홍빈 교수는 이 두 감정의 실체를 심도 있게 탐구했다. 국내 학자가 감정에 대해 존재론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한 저작은 극히 드물다. 감정보다 이성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 철학의 풍조에 비쳐봐도 이 책은 돋보이는 철학서이다.

저자는 ‘과연 죄책감·수치심이 도덕적 감정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어 그는 성서, 고대 그리스 철학, 헤겔과 니체에 이르는 서구 철학을 두루 살펴보며 두 감정이 개인 차원의 단순한 도덕 감정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병리적 심리 현상 혹은 비규범적 심리 상태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책과 삶]수치심과 죄책감의 발원지는 ‘내 안의 타자’

헤겔은 수치심을 자연적 존재에서 규범적 존재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감정으로 봤다. 사회적 감정에 근접한 것이라는 의미다. 니체도 수치심을 자연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학습에 의해 체득된 것으로 파악했는데 헤겔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헤겔과 니체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수치심은 정신의 현상학이 아닌 인간학의 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독일 철학자 네켈도 “모든 수치는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규범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오직 사회적 삶 속에서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률 같은 사회적 규범을 의식한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체험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타인을 내 안에 비춰보는 행위, 즉 ‘내 안의 타자’는 죄책감과 수치심의 발원지이다. 저자는 두 개의 사회적 감정을 탐색하며 ‘내 안의 타자’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고찰한다. 그는 이 과정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 물음과 깊이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집단 정서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랜 시간을 거쳐 한 집단에 퇴적되는 정서를 일컫는다. 집단 정서는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감정으로서의 죄책감·수치심도 한 집단을 묶어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 통합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수치심은 한 집단의 명예 의식을 고양하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또한 수치심을 통해 사회적 권력관계를 읽을 수 있다고도 한다. 엘리아스와 니체는 서구의 근대화 혹은 문명화 과정을 수치심이 확산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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