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창립 막으려 회유·협박 기술자의 자존심 보여줄 것”
14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삼성전자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에 새로운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날이었다. 우산을 받쳐든 그들의 표정은 상기됐고 적잖이 긴장감과 비장함도 비쳤다.
오후 2시 금속노조 소속 사회자의 진행으로 창립총회가 시작됐다. “불법 고용 철회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구호는 서툴렀고, 때로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가 진행되면서 목소리는 커지고 힘이 붙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수석부지회장으로 선출된 라두식씨는 “우리는 모두 최고의 기술자들인데 기본적인 삶조차 빼앗긴 채 살아왔다”면서 “기술자의 자존심을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곳곳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들의 주말 특근수당을 파격적으로 높여 노조 창립총회를 막으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삼성전자서비스 불법고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12일 삼성전자서비스 영서지점 ㄱ차장이 모 협력업체 팀장에게 보낸 ‘[긴급]전사 주관 주말 이벤트 내용 전달’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입수해 공개했다.
주말인 13일과 14일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면 건당 5만~11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각 센터별로 주말 근무성적이 일정 기준 이상 충족하면 1인당 10만원의 수당을 별도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뿐 아니라 협력업체 사장들이 총회 참석을 막기 위한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노조는 조합원 명단은 물론 구체적인 조합원 수도 공개하지 않았다. 자칫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고 보고 공개 시점을 미루기로 한 것이다. 경남 통영에서 올라온 한 협력업체 직원은 “직원들이 노조 설립을 앞두고 회의하려고 하면 협력업체 사장이 미리 알고 못하게 막는 일이 있었다”면서 “직원들 내부에 정보원을 심어두고 노조 참여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다른 직원은 “사장이 그동안 노조 없이도 잘해와놓고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려 하느냐면서 폭언 섞인 압박을 해왔다”며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는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총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노조이지만 향후 법원 판결 등에 따라 삼성 노조가 될 수 있다. 현재 자발적으로 출범한 삼성 계열사 노조가 있지만 조합원 수는 15명만 공개된 상황이다. 하지만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나 불법파견(위장도급)이 인정되면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기로에 서게 된다.
노조는 당장 다음주부터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공대위는 지난 11일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인건비도 본사에 입금했다가 돌려받는 등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교섭 요구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협력업체들이 독립돼 있다는 기존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노조 출범을 계기로 위장도급을 가리는 법적 다툼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