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니 동료 없이 검붉은 물만
서울 노량진동 상수도관 공사의 수몰사고 작업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가 1명 있다. 이원익씨(41)는 언론과의 직접 인터뷰는 피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씨 등 인부 8명은 지난 15일 평소처럼 지하 40m의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했다. 장마철이었지만 아침 조회 시간에 별다른 주의사항은 받지 못했다. 고립된 상태에서 평소처럼 지하작업을 하느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외부와 연결된 비상벨만 믿었다. 긴급 대피 상황 등을 알리기 위해 설치해 놓은 비상인터폰 2대의 벨소리는 굉장히 컸다. 하지만 이날 이씨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50분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위험을 감지한 임경섭 동아지질 주임(실종 상태)이 “대피하자”고 소리쳤다.
16일 서울 노량진 배수지 수몰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오열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50m쯤 뛰었을까, 이씨는 직경 2.2m의 상수도관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수압이 높아지면서 상수도관 안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이씨는 “동료 둘이 앞에 먼저 갔는데 다 넘어졌다. 나는 무조건 달렸다”고 말했다. 뒤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기척을 느꼈다. 2분여를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상수도관의 길이가 1㎞ 이상인 데다 바닥에 작업 장비 등 장애물이 많아 빠져나가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뛰는 것 외에 다른 탈출수단은 없었다.
300m쯤 뛰었을 때 전등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씨는 운좋게 비상 전등을 집어 앞을 밝히며 달렸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나는 살았지만 머리 한 대 맞으면 쓰러질 쇳덩어리 이런 게 터널에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인부들은 모두 탈출에 실패했다. 현장을 빠져나온 이씨가 뒤를 돌아봤을 때는 관로에는 검붉은 물만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