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동북아 대장정 동행기… 중국을 좀 더 이해하고 동북아를 우리의 무대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 돼
중국은 넓었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황허는 이 드넓은 대륙을 가로지르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013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이 ‘5천㎞의 물길, 5천년의 역사 대륙, 황허(黃河)에서 새로운 문명지도를 펼쳐라!’라는 주제로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이번 대장정에는 3만5000여명의 국내외 대학생이 신청, 3차에 걸친 공개 전형을 통해 남녀 각 50명씩 100명이 대원으로 선발됐다. 황허 하류에서 발원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7박8일간의 대장정에 이들과 함께했다.

‘2013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 대원들이 중국 허난성 뤄양시 황허 샤오랑디에서 강물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다. 샤오랑디는 황허 치수를 위한 수리시설로 1년에 한 번 황톳물을 쏟아낸다.
■ 대장정의 시작, 황허삼각주
대장정의 출발지는 황허의 끝자락 황허삼각주였다. 산둥성 웨이하이(威海)공항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둥잉(東營)시는 보하이만으로 흘러드는 하구 지점에 위치한 황허삼각주의 중심 도시다. 황허가 황토고원을 지나며 함께 떠내려온 토사가 만들어낸 삼각주가 황허삼각주다. 서해와 맞닿아 형성된 습지생태지구는 중국 온대습지 중 자연생태계가 제일 잘 보존된 지역으로 1917종에 달하는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단정학, 백두학 등 7종의 희귀조류를 비롯해 271종의 다양한 조류를 만나볼 수 있다.
황허와 바다가 만나는 입해구에서는 황허의 황톳물과 바다의 푸른 물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대장정팀은 며칠 전 쏟아진 폭우로 강물이 불고 물살이 거세 입해구에 접근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인 쯔보(淄博)로 향했다. 쯔보는 춘추전국시대 가장 번영한 제나라의 수도였다. 이곳에 있는 순마갱은 제나라 경공의 묘지 안에 순장한 말의 묘이다. 1964년 우연히 발견된 뒤 한 기만 발굴, 복원되어 공개되고 있다. 현재 발굴된 말은 총 228필이지만 순마갱 규모로 볼 때 600필 이상이 순장됐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제나라의 강성함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대장정팀은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쯔보역으로 이동했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침대가 있는 열차다. 2~3층 침대와 간이 세면시설이 갖춰져 있고, 냉방시설도 좋았다. 침대에 누워 흔들리는 열차의 리듬에 맞춰 눈을 감았다.

■ 황허 중류의 고도 카이펑·뤄양·시안
야간열차는 10시간을 달려 3일 새벽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 도착했다. 카이펑은 정저우(鄭州), 시안(西安), 뤄양(洛陽) 등과 함께 중국 8대 고도(古都)로 불리는 2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대장정팀 일정은 카이펑부,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 철탑 순으로 예정됐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아침장 구경에 나섰다. 아침 찬거리를 사는 시장이라고 들은 것과 달리 규모가 제법 컸다. 한국의 5일장과 비슷한 풍경으로 반찬거리는 물론, 옷, 신발 등을 팔고 있었다.
카이펑부는 우리에게 드라마 <판관 포청천>으로 잘 알려진 북송의 청백리 포증이 집무를 보던 관청이다. 카이펑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와 북송시대 관리들의 집무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청명상하원은 송의 화가 장택단이 송대 당시 거리 풍경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그대로 재현한 대형 민속촌으로, 황허의 범람으로 호수에 가라앉은 북송시대의 거리와 중세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현지 교류로 중국 지후이(集慧)중학교 학생들과 만난 것이다. 대장정 대원들은 지후이중 학생들과 함께 청명상하원을 탐방했다.
이어 철탑으로 향했다. 철탑은 철이 아닌 적색·갈색·남색 등 여러 색깔의 유리벽돌로 축조한 탑이다. 주된 색깔이 적갈색이어서 멀리서 보면 철제탑으로 보인다 하여 철탑이라 불렸다. 북송시대 유일의 현존하는 건축물로, 청나라 도광제 때인 1841년 황허가 범람해 카이펑이 침수됐을 때 이 탑만 하늘로 치솟았다고 한다. 그만큼 엄청난 높이를 자랑했다.
카이펑은 황허로 발전하고, 황허로 몰락한 비운의 도시다. 역사상 7차례나 도시가 완전히 수몰돼 8대 고도에 맞지 않게 유물이 많지 않다. 황허 치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도시이다.
뤄양에서는 황허 샤오랑디(小浪底)를 탐방했다. 샤오랑디는 황허 본류를 막아 만든 2대 수리시설이다.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1년 말 완공했다. 샤오랑디는 1년에 한번 며칠에 걸쳐 황토와 함께 물을 방류하는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지난 7월 방류가 됐는데 이날 또 한번 방류가 진행됐다. 규모는 작았지만 엄청난 기세로 황토를 쏟아내는 진풍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중국인들은 황허를 ‘어머니의 강(母親河)’이라고 부른다. 황허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황허의 물줄기는 중원을 기름지게 했고, 황허의 풍요로움은 역설적으로 중국인들의 투쟁과 갈등을 불렀다. 지도교수로 동참한 김종섭 서울시립대 교수(국사학)는 “고대 중국인들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계속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왕조가 바뀔지 몰라 조심하는 마음이 몸에 배었다”며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도, 남을 잘 믿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뤄양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시안은 한~당 시대엔 장안으로 불린 곳이다. 지금도 세계 4대 고도로 꼽힐 정도로 옛도시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장정팀은 성벽 트레킹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명나라 초기인 14세기 후반에 축조된 시안성은 총둘레가 13.75㎞이며, 높이 12m, 폭 15m에 이르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고성벽이다.
트레킹은 만만치 않았다. 내리쬐는 태양에 그냥 걷기도 힘든데 대원들은 10㎏은 될 법한 배낭을 짊어졌다. 동문에서부터 북문을 지나 서문까지 약 8.7㎞를 걸었다. 대원들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한 이 과정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발을 다치거나 물집이 잡혀 제대로 걷기 힘든 대원들까지 “이것은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며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완주했다. 도전하는 젊음이 아름다웠다.

마둬 지역의 목초지에서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다.
■ 황허의 발원지를 찾아서
오전 4시, 고된 트레킹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기상했다. 드디어 황허의 발원지 마둬(瑪多)로 향하는 날이다. 시안에서 비행기를 타고 칭하이성의 시닝(西寧)으로 이동했다.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고원 도시 시닝 땅에 발을 내딛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며칠 동안 더위에 지친 대원들은 모두 긴 호흡을 하며 시원한 공기를 들이켰다.
시닝을 출발해 하이난저우(海南州)를 거쳐 마둬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땅이 하늘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에 보이는 구름은 입체영상처럼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이었다.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야크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개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여기저기 다리를 놓거나 산을 깎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여정은 험난했다. 평균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고산을 5~6개 넘어야 했다. 길도 점점 험해져 버스는 계속 덜컹댔다. 출발 전 예방약을 먹었음에도 고산증 환자들이 발생하고, 장시간 이동에 멀미 환자가 속출했다. 이들 중 일부는 결국 발원지를 눈앞에 두고 철수해야만 했다. 하이난저우에서 9시간여를 달려 밤늦게 드디어 목적지인 마둬에 도착했다.
마둬는 칭하이성 티베트자치주에 있는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티베트인들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오색천에 경전과 기도를 적어 걸어두면 바람이 불어 그것을 하늘에 전해준다고 믿는다. 룽다(긴 장대에 매단 한 폭의 길다란 깃발)와 타르초(만국기처럼 긴 줄에 정사각형의 기를 줄줄이 이어 만든 깃발)가 곳곳에서 바람에 나부꼈다. 마을 사람들은 순박했다. 함께 사진을 찍는 것에 기뻐하고, 카메라가 보이면 손을 흔들고 V자를 그려주었다.
황허 발원지로 가는 길은 탐험이라는 말이 옳을 듯했다. 4~5명이 한조를 이뤄 지프에 나눠탄 대원들은 50㎞가 넘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비 그친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에 감탄하며 요동치는 차에 몸을 맡겼다. 구름은 땅과 곧 닿을 듯했다.
칭하이성 바얀하르(巴顔喀喇)산 북쪽 기슭의 카르취에서 시작된 황허는 자링(札陵)호와 어링(鄂陵)호로 흘러드는데 이 두 호수 사이에 있는 산을 중국 정부가 황허 발원지라고 명명했다.
고도 4600m의 황허 발원지에는 야크의 뿔을 형상화한 기념비 우두비(牛頭碑)와 예의 룽다와 타르초가 있었다. 아침 기온이 11도쯤이던 마둬보다 더 추웠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있던 찜통 도시와 같은 나라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카이펑부 앞에서 대장정 대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대장정을 마치며
마지막날, 베이징에서는 중국 작가 리얼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리얼은 중국현대문학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큰 강이 작은 강을 만들고 작은 강이 다시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처럼, 공동체는 개인과 함께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동체를 강조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충돌이 발생하는데 동아시아 젊은이들은 공동체의 전통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은 대학생들이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동북아 미래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현장체험 및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대장정을 마친 대원들은 모두 ‘교류’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대륙에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을 발견했다는 대원도 있었다. 김다혜씨(21·동아대 의약생명공학3)는 “비전이 확립되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의 목표·비전이 뚜렷한 모습을 보니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돌아가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안은비양(19·한국교통대 항공서비스1)은 “조장을 맡으면서 리더십, 조원을 하면서 팔로십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며 그 위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현진씨(23·한경대 회계1)는 “리더십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며 “많은 대학생들이 도전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국씨(26·충남대 회계4)는 동북아를 다시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왜 유럽 같은 곳이 아닌 ‘동북아’ 대장정인가 생각했습니다. 동북아가 세계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한·중·일 3국은 서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너무 좁은 사고를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번 대장정이 중국을 좀 더 이해하고 동북아를 우리의 무대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