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혼
맛떼오 파스퀴넬리 지음·서창현 옮김 | 갈무리 | 444쪽 | 2만5000원
박근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 ‘창조경제’라는 것도 따져보면 자본주의의 변신술 가운데 하나다. 신성장 동력이니, 과학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이니 하며 차별적 수사를 동원해도 자본주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시대 변화에 맞춰 빠르고 치밀하게 변신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한 변신술을 읽어내고 가면을 벗기는 데는 고전적 마르크시즘만으로는 버겁다. 새로운 분석틀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탈리아 소장 학자 파스퀴넬리가 쓴 <동물혼>은 작금의 자본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부 칼이다. 창조경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네트워크 자본주의’이다. 인터넷, SNS, 스마트폰 등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자와 이용자를 착취하는지 보여준다.
구글은 애드센스 같은 광고 서비스로 돈을 번다. 구글은 광고를 위한 간단한 기반시설만 제공할 뿐 어떠한 콘텐츠도 생산하지 않는다. 콘텐츠는 모두 이용자들이 만들고 거래한다.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이는 마치 토지를 빌려주고 지대를 챙기는 행위와 흡사하다. 웹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 대다수는 이 같은 지대 수법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저자는 이들 기업을 기생체에 비유한다. 기생체는 다른 사람의 몫을 알아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먹는다는 의미를 담는다. 변신은 했으되 수법은 옛날과 다를 바 없는 자본의 모습이다. 인터넷이라는 공유지를 수탈해 지대를 취하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온라인에 접속해 놀거나 업무를 보는 동안 누군가는 우리 몫이어야 할 것을 빼내간다. 저자는 지적재산권도 공유지 수탈의 한 형태라고 비판하다. 지대가 전략적으로 진화한 형태라는 것이다.
동물혼(animal spirit)은 원래 경제학자 케인스가 처음 사용했다. 케인스는 대공황시기 주식시장 배후에서 투쟁하고 경기순환을 압박하는 비합리적이고 예측불가능한 힘을 지칭하는 데 이 용어를 썼다. 국내에서는 ‘야성적 충동’으로 번역돼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수같은 힘들은 행태나 전략 면에서 케인스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할수록 보이지 않는 야수의 힘들은 더 종잡을 수 없고 치밀하게 진화했다. 저자는 케인스의 용어를 채택하며 그 의미와 적용 범위를 확장했다. 그 까닭에 역자는 ‘야성적 충동’을 동물혼으로 차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