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과 인터뷰… ‘선 핵 협상 후 관계개선’ 구상 밝혀
오바마와 회동 피한 건 이란 내 강경파 의식 ‘속도조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 이어 미국 언론들을 통해 미국인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란 내 강경파의 반발을 의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미루는 등 속도조절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란과의 대화에 부정적인 미국 의회 기류에도 이란 측의 적극적 행보에 호응해 핵 협상에 속도를 내려는 오바마 대통령도 로하니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점에서는 비슷한 줄타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로하니는 25일 뉴욕에서 미국 언론 간부들과 만났다. 워싱턴포스트는 로하니가 핵 협상을 먼저 타결한 뒤 관계정상화 논의를 할 구상을 밝혔다고 전했다. 로하니는 핵 협상에 필요한 시간을 3~6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그는 2003~2005년 이란 핵 협상 대표를 지내 누구보다 협상 내용을 잘 안다. 그가 협상을 서두르려는 데는 그만큼 미국 주도의 대이란 경제제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국민적 열망이 큰 데다 국내 강경파의 역풍을 맞지 않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로하니는 전날 유엔 총회에서 오바마와의 조우를 피한 이유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를 하거나 얘기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회동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행동계획이 필요하다”며 “그런 회동을 성사시킬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고 했다고 MSNBC 방송이 전했다. 정상 회동은 미국이 총회 이틀 전 이란에 제안했다고 한다.
로하니의 신중한 태도에는 최근 유화 제스처에 대한 이란 내 강경파의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는 최근 몇 주 사이 정치범 석방, 서방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이란 혁명수비대를 위시한 강경파들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24일 CNN에 홀로코스트가 ‘비난받아야 할’ 사건이라고 말한 것이 이란 내에서 논란이 됐다.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이란 통신사 파르스는 로하니의 CNN 인터뷰 페르시아어 원문을 전하며 ‘비난받아야 할’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고, ‘홀로코스트’라는 말 대신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며 CNN이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NN은 로하니 대통령 측 영어 통역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 카림 사디야포는 “오바마와 악수하는 장면은 이란 국민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었겠지만, 이란 강경파들에게는 분노를 자극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 연설에 대한 미국 의회 반응도 회의적이다. 공화당 소속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에서 “수사에 불과하다”며 “경제를 옥죄는 제재를 통해서만 이란 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것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고 예루살렘포스트가 전했다. 민주당 소속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도 “이란이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안을 추구한다는 말은 환영하나 그의 말 속에 적대적 수사가 많이 들어있는데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백악관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로하니 대통령과의 비공식 회동 가능성을 열어뒀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정상 회동 의향을 거듭 밝혔다. 이란과 미국은 26일 뉴욕에서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핵 협상을 재개한다. 로하니는 이날도 미국 언론들과 집단 전화 인터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