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현대문명의 이기, 지리적 문맹을 낳다

서영찬 기자

▲ 맵헤드…켄 제닝스 지음·류한원 옮김 | 글항아리 | 422쪽 | 1만8000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섬 ‘마이다’가 세계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이때 마이다는 아일랜드 옆에 위치했다. 마이다는 이후 다른 지도에서 점차 육지에서 밀려나더니 1906년 북대서양까지 올라갔다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집트와 수단 국경 사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사막 지대 ‘비르타윌’이란 곳도 있다. 마이다와 비르타윌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지도와 지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지식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지리와 지도마니아(맵헤드)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과 삶]현대문명의 이기, 지리적 문맹을 낳다

저자 자신도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74주 최장 기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운 잡학 박사이자 맵헤드이다. 저자는 맵헤드를 장소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가령 미국 ‘하이포인트클럽’이 대표적인 맵헤드이다. 하이포인트클럽은 미국 각 주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가는 걸 목표로 모인 집단이다. 100개국 이상을 여행한 37세의 남자는 북대서양에 떠 있는 폭 27m의 섬에 발을 디디려고 수차례 악전고투했다. 결국 그는 3전4기 끝에 잠시 그 섬에 가보지만 세상은 그를 괴짜 취급한다. 저자에 따르면 위대한 탐험가들도 맵헤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형의 인쇄소에서 지도를 금속판에 새기는 일을 했고, 베스푸치는 지도 수집가였다.

하지만 맵헤드는 갈수록 줄어든다. 구글 어스로 우리동네 골목길까지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지도에 열광하는 성향은 어린 시절 생기는데 인터넷, 스마트폰이 생활화된 아이들이 지도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기회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인이 ‘지리적 문맹’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리적 문맹은 혼자 힘으로 길을 잘 못 찾는 경향인 동시에 주변 환경에 무감각해지는 풍토를 가리킨다. 등하교 때 걷기보다 자가용을 이용하고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감각, 즉 지리 감각을 잃어간다. 2002년 미국의 한 연구소가 8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곳의 고유한 생물 종보다 만화영화 <포켓몬스터>의 종류를 더 많이 알고 있더란다. 지리적 문맹은 사회 환경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냉전 시대 미국 학생들은 지리학과에 진학하려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지금 미국 대학에서 지리학과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 학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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