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클라리사 P. 에스테스 지음·손영미 옮김 | 이루 | 416쪽 | 18000원
늑대는 종종 남자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늑대는 여자다. 여자의 야성을 늑대에 견주고 ‘여걸’이라 칭한다. “자기가 얼마나 귀엽게 앉아 있는지 생각하는 고양이가 있을까? 자기가 지금 어떤 소리로 노래하는지 생각하는 새가 있을까?” 책은 여자라는 이름으로 부여받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든 야성을 깨우라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다. 융 심리학자이면서 심리 치료 전문의이기도 한 저자는 ‘미운 오리 새끼’ ‘푸른 수염 거인’ 같은 동화나 전설, 신화를 부려놓고 요리를 시작한다. 그야말로 여주인공 대해부다. 겉모습이 다른 미운 오리의 고충은 외모지상주의에 갇혀버린 여성들의 고충을 대변하고, 백조였다는 커밍아웃은 왠지 모를 묘한 쾌감을 준다.
미운 오리를 낳은 엄마도 예외 없이 도마에 오른다. 남들과 다른 새끼를 보면서 갈등하고 체념하는 아픔을 끄집어내고, 엄마가 아닌 여자로 다독여 준다. 저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빠 오리의 부재도 밝혀낸다. “애비라는 자는 아직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여기서는 미혼모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남자의 부재는 그들의 삶을 분명 힘들게 하지만 더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빨간 신’ 이야기는 자신의 재능과 욕구를 축소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용도로 해부된다. 신발이 없는 소녀가 있었다. 낡은 헝겊을 모아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빨간 신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부자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금빛 마차를 타게 된다. 할머니는 소녀가 힘겹게 만든 신이 낡고 더럽다며 불태워버렸다. 주체적이지 않은 부에 종속돼 사는 삶은 그녀의 야성을 무너뜨린다. 반짝이는 빨간 가죽신을 신은 소녀는 이제 뭔가를 하는 것보다 그저 남의 시선이 좋았다. 결국 빨간 신의 저주에 걸린 소녀는 미친 듯 끊임없이 춤을 추게 되었고, 다리가 아닌 신발이 추는 춤에 갇혀버렸다. 소녀는 결국 신발을 벗지 못하고 발목을 잘랐다. 저자는 소녀를 통해 재능 있는 여성들이 야성을 잃고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선택을 한다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와 심리학적 분석이 곁들여지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여자여, 욕망하는 대로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 혹 덫에 걸려도 좋다. 그대들에겐 덫을 해체할 수 있는 야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