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플…앨런 시겔·아이린 에츠콘 지음, 박종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40쪽 | 1만3000원
2011년 인터넷 은행 ING다이렉트가 대형 금융사에 인수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고객들은 훌륭한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뉴욕타임스에 e메일을 보냈다. 기사로 다룰 만큼 많은 양의 e메일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근심 어린 전망과 인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주주도 아니면서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이 팔린다는 소식에 이처럼 반응하기란 드문 일이다. 왜 그랬을까. ING다이렉트는 고객만족도 98%를 기록하며 빠른 시간에 충성 고객을 많이 확보한 기업이었다. 그 비결은 금융서비스를 단순화한 데 있었다. 전문가도 해독하기 어려운 가입 약관을 간명하게 만들었고, 서비스 이용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명쾌하고 단순한 서비스가 성공의 열쇠였던 것이다.
흔히 정보가 많을수록 이해도가 높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은 그와 정반대다. 세금고지서, 보험약관, 판결문 등은 정보량이 많은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 문서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소비자에게 복잡한 약관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복잡하고 긴 약관을 읽어보지 않고 ‘동의’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적잖은 기업과 행정기관이 복잡한 서비스로 시민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주장한다. 특히 금융업계는 복잡함을 금융 리스크 은폐 수단으로 삼아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융업계는 파생금융 상품을 팔 때 복잡한 약관을 적극 활용했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단서조항을 군데군데 넣어뒀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제대로 읽으려들지 않았고 결국 피해를 덤터기 썼다. 2008년 금융위기는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개인의 파산을 유도한 단적인 사례이다.
책은 복잡함은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늘린다고 설명하면서 기업과 행정기관은 단순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함은 곧 명료함인데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행위이다. 천재 투자가 워런 버핏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누이를 떠올린다고 한다. 누이가 이해할 만큼 쉽게 보고서를 쓴다는 말이다. 복잡함이 주주의 이익을 좇는 행위라면 단순함은 소비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게 <심플>의 핵심 논리다.
단순함의 극치를 달리는 구글 사이트도 초창기에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가장 신뢰받는 검색엔진으로 자리잡았다. 스티브 잡스도 항상 단순함을 추구했기에 애플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다. 또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복잡한 민원전화 서비스를 311번 회선 하나로 통합해 관료주의 혁신 모델로 정착시켰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뛰어난 만큼 만들어내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