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속물이 됐고, 그 자식들은 잉여의 나락에 떨어져”
<속물과 잉여>(지식공작소)는 지금 한국 사회의 정서와 체질을 ‘속물’과 ‘잉여’란 용어와 관련 개념으로 분석한 논문 9편을 담은 책이다. 엮은이이자 출판사 편집인이기도 한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논문을 추린 과정을 “잉여를 꿰다”라고 표현한다.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만 2100종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읽히지 않은 채 잉여로 흘러넘치는 논문을 추렸다는 의미다. 책은 적극적인 뜻에서 ‘논문 큐레이션 서비스’를 표방한다.
지난 2일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백 교수는 “논문 양은 굉장히 많아졌지만, 사회적 위상은 낮아졌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논문은 도처에 산재한다. 이 논문들을 새롭게 모아 연결하면, 이전엔 없던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고 편집·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이를 ‘선택과 배열’이라고 했다.
책은 김상민·김수환·김홍중·서동진·소영현·송제숙·안천·이길호·한윤형 같은 지식인들의 논문을 담았다. 백 교수는 머리말 ‘속물 정치와 잉여 문화 사이에서’를 쓰며 ‘속물’을 ‘체제 내에 포섭되어 축적하고 소비하는 주체’로 규정한다. 잉여는 ‘속물 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자들 가운데 속물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이자 ‘체제 안에서 살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체제에 포섭된 몸의 비듬 같은 존재’다.
백 교수는 1987년 형식적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를 ‘전 사회의 속물화’가 전개된 시기로 본다. “성공과 안전에 대한 강박증적 요구가 자기계발로 연결되고, 그것은 조기학습에서 평생학습에 이르는 삶의 전 시기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40~50대 기성세대가 된 이들은 아파트나 재테크에 집착하며 현장에서 가졌던 긴장감, 진정성을 잃어버렸다. 백 교수는 “애비는 벌써 속물이 되었고, 속물에도 쉽게 끼지 못한 애비들의 자식들은 잉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속물과 잉여를 삶의 현장으로 침투한 신자유주의의 결과이자 새로운 존재 양태로 설명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대중화된 인터넷이라는 매체도 신자유주의의 축적을 위한 중요한 축이다. 잉여는 거대 플랫폼뿐만 아니라 일베나 오유, 디시인사이드 같은 다양한 ‘거주지’에서도 다종다양한 문화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잉여는 얼핏 주체적 문화생산자로 보이지만 수탈의 대상이라고 백 교수는 분석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네이버·다음·구글 같은 거대 서비스 플랫폼 제공자들이 젊은이들의 잉여시간과 잉여활동을 흡수해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한다”는 설명이다. 정보자본주의가 기계와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고, 이용자 친화적인 매끄러운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해 새로운 지배와 통제, 수탈과 착취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뒤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아르바이트생은 자본-노동 관계에서 착취를 당합니다. 그는 틈날 때 네이버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플랫폼에 ‘수취’나 ‘수탈’을 당하게 됩니다.”
백 교수는 1980년대 도스 프로그램을 만든 컴퓨터 1세대다. 1995년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를 번역했다. 2011년 구제역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구제역 매몰지 협업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해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SNS를 적극 활용한 적이 있는 그는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의 미래를 낙관하지는 않는다.
그는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면서 국정원 댓글이나 일베 같은 문제가 생겨났다. 정치적 영향력은 더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것들은 새로운 사회 변혁의 도구로도, 지배의 도구로도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나꼼수’나 일베도 속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나꼼수는 속물스러운 잉여들이 만든 정치 놀이고, 일베는 사악한 속물들이 부추기는 잉여들의 놀이라고 했다. 그는 나꼼수가 권력의 부당함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있었지만, 파편화된 대중의 정치오락물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고 본다. “나꼼수 잘못은 아니지만 그 형식은 종편에 차용되면서 정치를 연예오락화하는 도구로 변해버렸고, 여성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서 한복을 선전하는 여배우가 되었다”며 ‘문화의 정치화’가 결여된 ‘정치의 연예화’는 위험하다”고 했다.
1976년 서울대 치대에 입학한 백 교수는 학생운동을 하다 본과 1학년 때 자퇴했다. 1979년 제대한 뒤 한신대 독문과에 편입해 학부를 마쳤다.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주로 계급론, 빈민론, 사회운동론을 연구했다. 경제학자 박현채의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창립에도 참여했다. 당시 문제의식은 살아 있다. 그는 “사회운동과의 연결이나 접합, 현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적 방법, 방향 제시가 중요하다. 학자의 기본 임무는 구체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실천과 잇는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 이용자들이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이룰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이유다.
백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반성적 의미에서 “나도 한참 속물”이라고 했다.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의 대사에 빗대 쓴 마지막 문장도 강조했다. “우리 이미 속물이지만, 벌써 속물은 되지 말자.”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같은 ‘미래’의 뜻이지만 시제적 미래인 ‘future’와 도래하는 뜻의 미래 ‘avenir’를 구분한 것처럼, 단순 시제의 과거 ‘이미’와 도래하는 과거 ‘벌써’를 구분한 표현이다. 백 교수는 “스스로 속물인지, 잉여인지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시처럼 읊다 보면 꽂힐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