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엘리자베스 존슨 지음, 박총·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348쪽 | 1만6500원
책은 약자, 가난한 자 그리고 고통받는 자에게 시선을 두면서 하나님을 성찰한 신학적 탐구이다. 여성 신학자인 저자는 현대 유신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현대 유신론은 이성주의에 경도되고 신을 인격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근원은 자연과학이 득세하고 세속화하면서 기독교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한 데 있다. 기독교는 방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명료한 관념으로 객관화하려 애썼다. 이런 태도는 결국 기독교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을 언어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해한 신성한 신비’로 정의하며 현대 유신론을 비판한다. 이를 위해 ‘살아 있는 하나님’(원제는 <Quest for the Living God>이다)이라는 신학적 명제를 도출한다. 이는 고착화, 정형화된 하나님 이미지에 반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어두운 실험실에서 원자 같은 것을 발견하듯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며 “그렇게 발견한 이미지는 우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신성한 신비를 베푸는 존재이다. 따라서 역동적이고 호혜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치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에 주목한다.
홀로코스트는 무신론보다 더 심하게 믿음을 위협한 사건이었다. ‘왜?’라는 물음 앞에 기독교는 당혹해 하며 제대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몸소 체험한 3명의 독일 신학자는 이 질문과 맞섰다. 이들은 인류의 고통을 직시하며 십자가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이 같은 종교적 분투 과정에서 탄생한 정치신학은 개인주의와 평화주의에 물들어 고통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 기독교단에 경종을 울렸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등 돌리지 않는 게 진정한 크리스천의 자세라고 말한다.
킬링필드, 인종청소, 르완다·수단에서 벌어지는 학살극 등 인류의 고통은 끊임없다. 학대와 차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십자가는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 세워지고 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이란 역사와 현장 속에서 십자가를 재발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타 종교를 포용하자는 다원주의자이기도 하다. 크리스천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서 ‘살아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그는 진화론마저 포용한다.
전통주의자가 들으면 표정이 굳어질 내용이 적잖다. 가령 ‘하나님은 왜 여성이나 흑인이면 안되는가’라는 대목이 그렇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 그림의 주인공은 젊은 백인 남성인데 이는 남성 하나님의 이미지를 낳았다. 이 그림에는 인종, 계급, 성 차별이 반영돼 있다. 기독교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여성혐오와 ‘지배하는 남성 하나님’ 이미지는 우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하나님은 한없는 모성, 즉 여성의 면모도 지녔음을 역설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심도 있는 고찰과 설득력을 갖춘 이 책은 미국 내 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는 등 인기를 얻었다. 그 때문일까. 2011년 미 가톨릭 주교회는 책의 일부 내용이 교리에 어긋난다는 성명서를 냈다. 사실상 금서로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적잖은 신학자와 독자들이 저자를 지지하며 논쟁을 촉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