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온도계 발명 같은 과학지식의 발전은 역사와 철학이 맞물려 있는 것

서영찬 기자

▲ 온도계의 철학…장하석 지음·오철우 옮김 | 동아시아 | 544쪽 | 2만7000원

온도계라는 것은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1600년대 초부터 사용됐다. 하지만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온도계는 제각각이었고 부정확했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규준으로 삼을 진정한 온도계가 필요했다. 책은 온도계, 더 엄밀히 말해 온도 측정법의 역사를 다룬다.

온도 측정법에서 핵심적인 숙제는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 같은 고정점, 즉 기준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밀한 온도계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고정점이 미세하게 달랐다. 1770년대 영국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모르겠다고 결론지었을 정도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은 사람 혈액 온도를 고정점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여름철 가장 심한 더위’ ‘깊은 동굴의 온도’ 등을 고정점으로 제안한 과학자도 있다.

[책과 삶]온도계 발명 같은 과학지식의 발전은 역사와 철학이 맞물려 있는 것

고정점을 확정하는 과정은 ‘온도계의 정확성을 어떻게 확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이는 ‘온도계를 측정하는 온도계는 어떻게 얻는가’라는 구절로 압축할 수 있다. 온도계 A를 측정하는 온도계 B를 얻는다 하더라도 온도계 B를 측정하는 온도계는 또 어떻게 얻을 것인가. 얼핏 한없는 순환논법을 연상시키는 이 문제는 온도계 연구자들이 꼭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었다. ‘규준적 측정의 문제’라 불리는 이것은 법칙을 검증하고 정당화할 때마다 부딪히는 숙제다. 온도계 연구자들은 실험과 관찰뿐 아니라 이 같은 인식론적 문제와도 씨름했다.

이 책이 탐색하는 것은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들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책은 온도 측정에 관한 과학 지식의 축적은 철학 지식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온도 측정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다룬다. 저자는 “비전문가를 위한 과학은 역사적이고 철학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에 대한 지식의 문이 열린다”고 말한다. 사실 과학과 철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구분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온도 측정용 물질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도 많은 실험과 논쟁이 있었다. 결국 수은, 공기, 에틸알코올 3개 후보가 결승에 올랐다. 이들이 벌인 각축전도 흥미롭다. 온도 측정법은 19세기 중엽에 와서야 정밀해졌다. 하지만 딱 부러지는 이론은 정립되지 않았다. 온도 측정법과 열 이론의 만남 그리고 동행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책은 온도 측정법의 진보가 이론 혹은 인식론의 진보와 어떻게 조응해나갔는지 보여준다. 이는 관찰과 실험으로 구축된 하나의 과학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진리로 자리매김하는지를 대변한다. 이 과정은 실험과 이론들의 보수성, 다원론을 포용하면서 완성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 장하석은 경제학자 장하준의 친동생이며 함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온도계의 철학>을 쓰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웠고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탈고했다. 이 책은 2004년 발간돼 과학철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받았고 저자에게 세계적 과학철학자라는 명성을 안겨줬다. 저자는 중학교 3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과학적 열정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온도계의 철학>이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과학적 열정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썼는데 이 겸손 어법 속에 학자적 자부심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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