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불황 때 자살의 증가는 경제적 원인보다 긴축정책이 더 큰 원인

서영찬 기자

▲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데이비드 스터클러, 산제이 바수 지음·안세민 옮김 | 까치 | 314쪽 | 2만원

경제 불황이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통념이다. 우리는 불황기에 우울증, 전염성 질환, 자살 등이 증가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라는 게 책의 논지다. 국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불황 그 자체가 아니라 불황이 촉발한 정부의 긴축 정책이라는 것이다. 공중보건 전문가인 저자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책과 삶]불황 때 자살의 증가는 경제적 원인보다 긴축정책이 더 큰 원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덫에 걸린 미국과 영국 정부는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영국 캐머런 정부는 국가부채 상환 부담이 증가하자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복지비 지출이 우선적으로 줄었고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했다. 경제는 더 위축됐다. 주목할 사실은 영국 국민의 건강 지표가 더 악화됐다는 점이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공화당의 긴축론자들과 맞서 싸우며 오바마 케어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 확충을 강조했다. 정부 지출을 축소하지 않은 미국은 영국과 달리 경기 회복이란 성과를 얻었다. 더불어 국민 건강 지표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불황기에는 실업과 파산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부가 이를 방치하느냐, 그렇지 않고 구제에 나서느냐에 따라 국민, 특히 저소득층의 운명은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긴축 정책 여부가 시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일반인 기대수명은 80세인데 비해 노숙자의 기대수명은 45세라고 한다. 이는 긴축 정책이 시민의 수명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가늠케 한다.

아이슬란드가 금융위기에 대처한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나라 정부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긴축의 유혹을 뿌리쳤다. ‘은행업계의 빚을 정부가 갚아주고 긴축을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 회복을 위해 지출을 늘릴 것인가’라는 물음에 투표자 중 93%가 후자를 택했다.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아이슬란드는 2012년 국민총행복과 행복지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건강 지표도 향상됐다. 아이슬란드가 불황에도 공중보건 예산 등 복지비 지출을 줄이지 않은 결단은 결과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 요구를 수용했다. 결과는 아이슬란드와 정반대로 재앙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은 민간 병원 대신 국공립 병원을 찾았지만 공중보건 서비스 체계는 무너진 후였다. 정부가 공공보건 인력을 3만5000명 이상 감축하고 예산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유아를 중심으로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이 급증했다. 또한 아테네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에이즈가 유행했다. 에이즈의 주요 감염 경로는 성 접촉이 아니라 마약 복용을 위한 정맥 주사로 드러났다. 실업과 빈곤이 확산되자 마약 복용도 늘어난 것이다.

책은 긴축 정책이 국민 보건의 관점에서 비합리적일뿐더러 재앙을 불러온다고 한다. 하지만 불황은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는 어떤 경제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정치적 신념에 근거해 경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들으면 따끔할 충고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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