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가 청춘이다…고주환 지음 | 글항아리 | 308쪽 | 1만5000원
지나간 시간을 떠올릴 때면 부록처럼 따라오는 것이 있다.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향기, 그때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반대로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생의 한때를 추억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코끝을 스치는 젖은 흙 냄새에서 과거에 뛰어놀던 동네가 생각나는 것처럼, 책은 나무와 꽃을 매개로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한다. 저자 개인의 한때지만 나무는, 꽃은 누구의 한때에도 배경이었기에 시리고도 정겹다.
저자는 치악산 자락 성황림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야말로 꽃, 풀, 나무가 지천인 자연의 품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느 여름 친구들과 면으로 처음 내려갔던 날, 그는 동요에서나 듣던 미루나무를 보게 된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그 높이를 보고서야 소년은 가사를 이해하게 됐다.
어른이 된 소년은 자연을 떠나 사회로 들어간다. 그곳은 혹독했다. 그에게 떨어진 삶은 공장에서 일하고 허름한 기숙사로 돌아가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대학시절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가 되어가던 그 시절,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창밖으로 공단 입구길 끝까지 가로등 불빛을 가리고 무성한 그림자를 드리운 플라타너스가 보였다. 커다란 절망의 암흑터널 같은 풍경이었다.’
그 암흑 같은 풍경은 한 여자로 인해 푸른 제빛을 찾게 된다. 집안에서 밀어붙이는 결혼이 싫어 그곳으로 도망쳐온 여인이었다.
무언가 비슷했던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종일 잡았던 손이 못내 아쉬워 플라타너스 그늘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플라타너스 길을 볼 때면 영혼의 교감을 느낀 여인의 손을 끝내 잡아당겨주지 못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내민 손을 그녀가 지쳐 거둬들일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던 무능력한 나 자신에 대한 회한의 감정과 함께.’
초라한 청춘의 고비마다 그에게 하얀 웃음을 지어준 나무가 있었으니, 바로 목련이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서 다녔던 교정에서, 훈련병 시절 PX로 몰려가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홀로 들어간 내무반 창문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목련은 참으로 아렸다. 그래서 그에게 목련은 ‘춘래불사춘의 꽃’이다.
책 속엔 어린 시절 도라지꽃 몽우리를 터뜨리며 놀았던 얘기, 자전거를 타고 여학생들 사이를 뽐내며 지나가다 코스모스 빼곡한 앞길에 넘겨박혔던 이야기 등 정겨운 장면들도 많다.
나무가 누구에게도 청춘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