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논란 왜?
평가원 측 시차 오류는 인정… 3점짜리, 등급 좌우할 수도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 오류 논란에 휩싸인 사회탐구 세계지리 8번 문항은 새로 주어지는 참고자료 없이 기존에 습득하고 있는 지식을 묻는 항목이다. 8번 문항의 <보기> ㄷ항목은 ‘유럽연합이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보다 총생산의 규모가 크다’고 제시한 뒤 이를 고른 학생은 ‘맞다’고 평가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총생산액의 규모다. 한국은행과 세계은행의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GDP)은 16조5775억달러로,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의 18조6835억달러보다 적다. 2011년 유엔이 발표한 자료에도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은 17조5906억달러로, 17조8834억달러인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보다 낮다. 이 문항의 세계지도 우측 하단에는 ‘(2012)’라고 연도가 제시돼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2012년을 표기한 것은 유럽연합에 가입한 국가가 27개국임을 기준으로 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일반적 특징을 묻는 것이지, 특정 연도 통계치에 주안점을 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2012년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이 유럽연합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일부 발표가 있었지만 27개국이 가입한 유럽연합이 성립된 2007년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유럽연합이 크다”고 덧붙였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보다 크지만, 2010년부터 이 구도는 역전됐다. 2011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해 올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유럽발 재정위기 소식을 접했다면, 충분히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평가원 측은 “2011년에 만들어진 2종의 교과서가 최근 통계를 반영하는 데 시차가 걸린다”며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세계지리 2종의 교과서와 이와 연계된 EBS 교재를 푼 학생이라면 답을 맞히는 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ㄷ항이 오답이라면 이 문항에서는 정답이 없게 된다. 3점짜리 8번 문항은 한 등급 차이를 좌우할 수 있어 이 문항의 오답 논란이 어떻게 정리될지에 수험생들의 관심도 커질 수 있다.
전 EBS 사회탐구 강사 박대훈씨는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해서 살펴보니 현실 통계와 달라 평가원에도 이의를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반적인 문제풀이 방식이 (틀린 것은 지워가는 식으로) 맞춰갈 수 있다 해서, 출제 자체의 오류를 가릴 수는 없다”면서 “이런 문항은 출제 검증 과정에서 당연히 걸러졌어야 할 내용이고, 현실과 달라 논란이 될 문제는 출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공부를 많이 한 학생들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상위권 학생들 상당수가 답을 맞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평가원은 오는 27일 수능 성적표를 학생들에게 개별 통지할 예정이다. 박대훈 씨는 “해당 문항에 대한 행정심판 청구 등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아직 채점 결과를 밝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해 평가원이 입장을 다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위해 1993년 11월1일 출범한 연합기구.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서명한 12개국으로 시작해 올해 7월 크로아티아가 가입하면서 총 28개국으로 확대됐다. 유럽 내 단일시장, 단일통화를 구축하고 공동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편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지역공동체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경제적으로 통합해 광범위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 위해 체결한 협정. 1994년 1월1일 발효됐으며 3개국 간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