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정치

김광호 정치부 차장

논리학은 난해한 것,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그나마 ‘일반화의 오류’는 가장 친숙하게 쓰는 논리학 용어일 것이다. 가끔 논쟁이나 토론 도중 폼나게 던지는 회심의 카드이기도 하다.

논리학에서 ‘성급한 일반화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는 ‘논쟁에서 가설을 설정하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말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큰소리 치곤 하지만 논리학에선 ‘일반화의 오류’가 되기 십상인 셈이다. 일상에선 부분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현상을 ‘일반화의 오류’로 이해하기도 한다.

[마감 후]‘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정치

정부는 지난달 2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규정했다.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규약 부칙 5조를 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는 해직자 조합원을 인정치 않는 현행 교원노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전교조는 물론 세계교원단체총연맹, 국제노동기구 등이 일제히 규탄하고 나섰다.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결정한다’는 국제기준에 어긋난 탄압이란 이유였다.

정부는 지난 5일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결행했다. 대상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이 속한 통합진보당이다. 법무부는 청구 이유에서 ‘이석기 등이 관여한 RO 조직의 내란음모·선동 행위와 일심회 간첩단 사건 등 각종 반국가 활동’을 문제 삼았다.

두 사안의 공통점은 ‘부분’이 ‘전체’를 덮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노동단체들의 ‘글로벌 스탠더드’ 요구는 차치하고, 규약상 일부 법적 충돌을 문제 삼아 유일한 교원노조의 25년 공과를 한순간에 ‘금 밖’으로 밀어냈다. 수만 당원 중 용인하기 힘든 일부 몽상가들 때문에 ‘제도 속 진보정당’은 공중분해의 벼랑에 섰다. 그간 우리 사회 민주주의·다원성의 진전으로 평가되던 것들이 ‘사상 초유’란 수식어들 속에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될 판이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일반화의 오류’의 정치적 버전을 보는 듯하다. “정치가들은 절대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최대한 왜곡하고 진실의 조그만 무화과 잎은 어딘가 잘 안 보이는 글씨로 묻어둔다”는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갈파대로 이들의 ‘일반화의 오류’는 계산된 오류인지도 모른다.

물론 판단은 우리 사회 ‘논리의 보루’여야 할 법원에 맡겨져 있다. 그나마 법원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한 것은 사법부만큼은 아직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지 않다는 증좌로 보여 다행스럽다.

하지만 먹이를 문 야수의 공격은 참으로 집요하다. 법원이 제동을 걸자, 검찰은 곧바로 전교조의 대선개입 혐의 수사로 대응했다. 여당 소속 국회 정보위 간사는 20일 돌연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 대남 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회원 중 불법성이 확인된 15명가량을 사법처리할 계획”이라며 진보당과 전교조를 거론했다. 이제 국회의원이 내놓고 정보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상황이다.

그렇다. 처음부터 본질은 ‘궤멸’이었다. 법 위반도, 몽상가적 모험주의도 아니다. 법 논리는 그저 장식품이다. 자유·인권을 입에 올리며 대한민국 주류를 자처해온 보수들이 숱한 세월 동안 전교조와 진보당을 못마땅해하며 다져온 궤멸 욕망이 법의 이름을 빌린 사형선고로 현실화한 것일 뿐이다. 존재 부정, 그것이 본질이다.

이 정도면 왕조시대 권신들의 삼족을 멸하고, 구족을 멸하던 야만과 무엇이 다를까. 당인(黨人) 한두 명을 볼모 삼아 결국 그 무리를 궤멸시키던 왕조적 정쟁 구조와 말이다. 이념의 갑옷을 입고 편을 갈라, 상대의 모든 것을 광풍 속에 가둬버리던 ‘매카시즘’의 욕망 구조 또한 동일하다.

민주주의 역사는 ‘톨레랑스’(관용) 확대 역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양성을 가치화하고, 양 극단조차 울타리 안에 포용하며 사회 갈등 총량을 축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효율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위험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 소외와 배제는 벼랑으로 몰리면 저항하고, 극단화한다.

“언젠가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 목을 매다는 당신들 사형명령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1886년 메이데이(노동절) 총파업 후 처형된 미국 노조 지도자가 남긴 유언이자 예언이다. 지금 ‘일반화의 오류’에 질식당한 우리 사회 관용이 훗날 어떤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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