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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이 “오류 아니다”며 제시한 대법원 판례,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적용 땐 되레 ‘자승자박’

입력 2013.11.25 21:27

  • 강진구 기자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출제 오류가 아니라는 논거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대한 2011년 대법원 판례(2010두17267)를 제시하고 있다. 이 판례는 5개 답항 중 4개는 명백하게 틀린 설명이 포함돼 있어 나머지 답항의 설명이 다소 명확하지 않더라도 정답을 고르는 데는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평가원은 이를 토대로 논란이 된 세계지리 문항도 교과서 내용에 따라 명백하게 틀린 보기를 지우면 답을 고를 수 있어 출제 오류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원의 주장은 대법원 판례의 결론 부분에만 근거한 것이다. 판례의 출제 오류 판단 취지를 감안하면 세계지리 8번 문항은 평가원 스스로 ‘자승자박’하는 성격이 짙어진다.

대법원이 초등임용시험에서 출제 오류를 부정한 것은 논란이 된 문항에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즉 ‘공을 뽑아서 흰 공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표현은 ‘무조건 먼저 흰 공을 뽑은 사람이 이기는 경우’로 볼 수도 있고 ‘둘 다 공을 뽑은 후 한 사람만 흰 공을 뽑았을 때 이기는 경우’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반면 이번 수능 문항은 지도 하단에 2012년이라고 표시를 해놓고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총생산액을 비교하라고 제시돼 있다. 평가원의 주장대로 이 문항이 특정 연도가 아니라 과거 일반적인 경향을 묻는 것으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면 평가원 설명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이 문항을 ‘2012년 데이터를 기초로 생산액을 비교하라’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면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이 크다’는 평가원의 정답지는 명백히 틀린 설명이 된다.

대법원은 “답항의 문장 구성이나 표현 용어의 선택이 지나칠 정도로 잘못되어 평균 수준의 수험생으로 하여금 정당한 답항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든 때에는 (출제자 재량의) 일탈·남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일부 용어 표현이 미흡하거나 부정확하지만 정답을 선택하는 데 장애를 받지 않을 정도에 그친 때에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출제자가 특정 연도의 생산액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향을 물을 의도를 갖고 문항을 구성하면서 지도에 2012년이라고 표현한 것이 ‘지나칠 정도로 잘못된 표현’인지 아니면 ‘일부 부정확한 표현’에 불과한지에 따라 재량의 일탈·남용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기 시작된 2010년부터 3년간 계속해서 NAFTA가 EU의 생산액을 추월했는데도 왜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추세적으로 생산액이 더 높다고 판단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평가원은 2009년 국제통계연감을 토대로 기술된 교과서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출제 의도와 답항 선택의 지시사항은 시험문제 자체에서 객관적으로 파악, 평가하여야 하며 특별한 사정도 없이 문언의 한계를 벗어나 임의로 출제자의 숨겨진 주관적 출제 의도를 짐작하여 판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지도에 2012년이라고 써놓은 출제자의 의도는 문항 자체로 판단해야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와 관련지어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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