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하니 정권, 경제 회복 물꼬… 다른 현안 해결도 속도 예상
미 중동정책·이스라엘과 무슬림국 관계에도 영향 미칠 듯
이란이 서방과 핵 협상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우면서 이란 안팎에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중동 내 이란의 위상은 높아지고, 협상을 이끌어낸 하산 로하니 이란 정권은 국내 개혁은 물론 중동 역할 재조정의 헤게모니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이번 협상은 취임 100일을 갓 넘긴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임기 초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된다. 중도 성향의 개혁파 정부는 서방 제재 완화의 물꼬를 트면서 지난 8월 출범 당시 공약했던 높은 실업률과 불안한 정치 상황 해결을 위한 선행과제인 경제 고립에서 벗어날 기반을 마련했다. 이란이 예상 밖으로 20% 우라늄 농축을 포기한 것도 성과 없이 협상을 끝내면 국내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방과의 대화 자체를 반대했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협상을 지지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4일 테헤란 대통령 관저에서 이날 타결된 핵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24일 “핵 협상 첫 단계를 이룬 로하니는 다른 현안 해결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2009년 부정선거 시위로 수감된 개혁파 석방 문제나 정치범 관련 완화 조치들이 나올 수 있으며, 언론 자유나 여성 지위 향상 조치들도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버밍엄대 이란전문가 스콧 루카스 교수는 “로하니는 제한적이지만 하메네이의 지지를 받고 있고, 이번 핵 협상은 보수 지도층이 현 정부를 시험한 첫 무대였다”며 “향후 정치적 지원이 더해질 것”이라고 독일 라디오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그러나 로하니가 서방 제재 이전 상태로 경제를 복구해놓지 못하면 반대로 보수파의 반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란이 핵 협상에서 성과를 낸 것은 미국의 입장 변화도 한몫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30여년간 이어진 양국의 적대관계가 풀리는 신호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의 이란 정책은 중동 전체 환경과 맞물려 돌아간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치 지형이 재편되면서 최대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위기가 찾아왔고, 이집트의 세력은 약화됐다. 미국이 중동 내 균형을 위한 새 카드가 필요할 때, 이란이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의 주요 우방국이자 대표적 반이란국인 이스라엘 등에 파장을 미친다. 가디언은 이번 협상은 미국이 이제 전통적인 동맹국들과는 독립된 행보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외교정책의 중심을 중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적들은 세계에 이란 공포증을 퍼뜨리고 싶었겠지만 합의는 신뢰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종파 갈등이 심화되는 중동에서 시아파 대국인 이란의 부상은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안보동맹을 맺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주말 사우디·카타르·쿠웨이트 지도자들은 회담을 했다. 사우디 국왕자문회의 압둘라 알아스카르는 “이란이 중동 정치에서 하나(핵)를 포기하고 다른 힘을 얻을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종 핵 협상 합의안을 만들 앞으로 6개월은 이란이 중동과 무슬림 국가를 힘의 위협으로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버릴 수 있을지 시험하고, 중동 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평가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