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 지식사회에 번지는 중화주의에 대한 우려

서영찬 기자

▲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조경란 지음 | 글항아리 | 336쪽 | 1만8000원

중국 지식계의 신좌파는 덩샤오핑의 발전 노선을 비판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신좌파는 1990년대만 해도 중국 발전모델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점차 중국의 성장을 긍정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의 G2 등극을 자신들의 염원이 실현된 것인 양 공공연히 자랑한다. 왕후이 칭화대 교수가 대표적인 신좌파다.

[책과 삶]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 지식사회에 번지는 중화주의에 대한 우려

신좌파와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파 쉬지린은 신좌파를 ‘형좌우실(形左右實)’이라 정의했다. 외양은 좌파인데 실제로는 자본가,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신좌파가 체제 비판이라는 좌파적 본성을 잃고 우파화했다는 평가에 저자도 공감한다. 신좌파는 과연 사상적으로 전향한 것일까.

신좌파는 원래 자본주의는 비판했지만 국가의 강대화는 지지했다. 이들이 굴기로 표현되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옹호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신좌파는 자연스럽게 친정부, 우익으로 분류된다.

반면 덩샤오핑 체제에서 우파였던 자유주의파는 2000년대 들어 좌파의 처지가 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를 비롯해 친후이, 첸리췬, 거자오광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자유주의파는 국가 이익보다 인민의 권리를 더 강조한다. 따라서 대국굴기 시대에 이들은 체제 비판세력으로 분류된다.

가히 좌우파 착시현상이라 할 만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좌파, 영원한 우파는 없다는 사실이 오늘날 중국에 들어맞는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 지식계는 21세기 들어 격렬한 분화를 겪었다. 이 분화를 추동한 것은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다. 중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국가의 존재 내지 국가의 힘을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사회의 핵심 키워드가 1980년대 ‘개인’, 1990년대 ‘계층’이었다면 2000년대엔 ‘국가’가 됐다. 그만큼 지식계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논의의 태반은 중국모델론, 당국체제 등 ‘국가’에 관한 것이다.

중국 지식계에 유교가 주요 테마로 부상한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좌우파를 불문하고 유교와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공산당은 ‘화(和)’를 공식 슬로건으로 채택했는데 이 단어는 유교적 개념이다.

유교 사조의 부흥도 중국 굴기와 연관 있다. 서구 발전모델의 대항마로 유교를 적극 수용해 중국 발전모델을 구축하자는 열망이 뜨겁다.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을 빗댄 ‘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진지하게 논의된다. 유교 강세는 결국 ‘어떻게 해야 미래에도 강한 중국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모색 과정에서 나왔다. 베이징올림픽 전후로 중화주의가 부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이 막강해지면 자존심이 지나쳐 자만하기 십상이다. 자만이 심해지면 대화보다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 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때 우파 지식인들은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선다. ‘너와는 달라’라고 외치는 고유 문명론, 국가주의, 문화우월의식이 득세하는 것도 이때다. 저자는 이 같은 불미스러운 상황이 중국 지식계에 확산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마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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