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 오사카, 단 한 번의 계절…김진우·이지연 지음 | 프롬나드 | 308쪽 | 1만4000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날들이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남자는 그해 마흔이었다. 어떤 것에도 혹하지 않는다는 나이. 그는 심하게 흔들렸다. 기자로 사는 삶을 지속해야 할지, 남편으로 아빠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결론은 1년간의 휴직이었고, 연수라는 명목으로 일본행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하필 그해는 2011년이었고 그의 마지막 출근일인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거대한 쓰나미는 그의 머릿속도 덮쳤다. 도쿄가 아닌 오사카로, 일단은 혼자, 그렇게 일본으로 떠났다.
남자는 홀로 도쿄와 교토를 유랑했다. 급할 것 없고 쫓길 일 없는데도 바삐 걷는 자신을 보면서, 습관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두 주 후 그는 아내와 아들을 맞았다.
세 식구는 오사카시 히라노구 기레에 있는 11평짜리 임대형 투 룸에 설렘과 두려움을 풀어놓고 새 삶을 시작했다.
고즈넉한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세 식구 살기에 딱 좋은 집이었다. 관공서를 찾아가 서툰 일본어로 어찌어찌 외국인등록증을 만들고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집 사용법부터 익혔다. 아들은 뛰어 놀기 딱 좋은 마당이 넓은 유치원을 골랐고 그는 일본어학원에 등록했다. 아내는 결혼 8년 만에 처음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됐다.
이들은 덜 먹고 덜 쓰는 대신 한 달에 한번씩 여행을 떠났다. 사슴이 지천인 나라공원을 시작으로 모래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고토비키하마 해변, 숲으로 둘러싸인 노천 온천 등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맛보고 즐겼다.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오래 걷기도 했지만 세 식구가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아이와 함께 돌침대처럼 만들어 놓은 탕에 누웠다. 붉게 물든 나뭇잎,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그 위로 반짝거리는 별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이는 나를 따라 탕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서는 “아, 좋~다”하며 늙은이 흉내를 낸다.”
한 가족의 특별한 1년 속엔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있고 ‘아빠 어디 가’도 있다. 그의 발길과 눈길이 그려내는 일본의 사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일곱 살 난 아들과 무뚝뚝한 아빠의 오사카 시절은 정겹고도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