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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 사건’을 통해 본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입력 2013.12.20 20:16

▲시인을 체포하라…로버트 단턴 지음·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64쪽 | 1만5000원

1749년 봄 프랑스 치안당국은 ‘불온한 시’를 퍼뜨린 시인들 체포에 나섰다. 가장 먼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검은 분노의 괴물’로 시작하는 시를 비롯해 시가 적힌 쪽지 서너개를 몸에 지닌 채 검거됐다. 괴물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를 지칭한 것으로, 이 학생이 지닌 시들은 하나같이 왕과 베르사유 궁전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시의 원작자를 색출하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 14명이 굴비 엮이듯 체포돼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됐다. 검거된 이들은 학생, 신부, 수도사 신분의 엘리트였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14인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시의 발원지는 물론 이들 14명의 상호 관련성도 불명확했다. 하지만 시의 종류가 당국의 예상보다 많고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다는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당시 압수된 시들과 수사 기록은 현재 프랑스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존돼 있다. 저자는 이 자료를 통해 18세기 중엽 프랑스 대중의 의사소통망을 들여다본다. 문맹률이 높고 출판문화가 꽃피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 이슈가 어떻게 소통되고 전파됐을까.

1740년대 프랑스는 주변 국가와의 굴욕적 평화조약, 부당한 조세제도, 왕의 실정 등으로 시민의 불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비판의 화살은 루이 15세로 향했다. ‘루이는 수치스러운 품에 안겨 잠든 채/ 가당치 않은 비천한 여인에게 빠진 채/ 그녀의 품에서 우리의 눈물과 오욕을 잊고 있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시들이 항간에 떠돌았다.

시는 기숙사, 식당 같은 장소에서 은밀하게 암송됐고, 이를 들은 누군가는 시를 옮겨 적거나 암기해 다른 사람에게 퍼뜨렸다. 이들은 시에 리듬을 가미해 ‘샹송’이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따라부르고 외우기 쉬운 샹송은 전파력이 컸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개작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나의 시는 다양한 버전을 낳으며 퍼져나갔는데 권력 비판이라는 특징은 공통적이었다.

[책과 삶]‘14인 사건’을 통해 본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당시 권력을 비판한 시의 확산 현상을 여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여론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본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결여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또 시가 주로 소통된 곳이 라탱 지역이라는 파리 대학가이고 식자층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론이라 부르기에는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여론에는 못 미치지만 프랑스 대중의 의사소통 체계가 1749년쯤 이미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권력 비판 같은 정치 이슈는 불만 붙으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1749년이라면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40년 전이다. 하지만 혁명의 토대는 1749년에 이미 다져지고 있었다. 시를 통해 대중은 권력 비판 의식을 어떻게 공유하고 확산시키는지를 체득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지젝의 말마따나 혁명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듯 찾아오는 것이 아닐 터이다. 혁명의 순간은 대중의 비판정신과 소통이 숙성된 후 찾아온다. 1749년 ‘14인 사건’도 혁명이라는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었던 무수한 봄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1740년대 파리의 의사소통망을 들여다보며 발견한 것도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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